한국축구의 역사는 박지성(30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던 지난 11년 동안 박지성은 언제나 영광의 자리에서 반짝 반짝 빛났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등 박지성이 남긴 수많은 업적들은 한국축구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카타르 아시안컵 일본과 준결승전 출전으로 박지성은 통산 8번째로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출전)에 가입했다. 비록 A매치 출전 수는 몇몇 선배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박지성이 한국축구 최고의 레전드라는 점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박지성보다 센추리클럽에 먼저 가입한 선수는 단 7명. 차범근(121경기 55골), 홍명보(135경기 9골), 황선홍(103경기 50골), 유상철(122경기 18골), 김태영(105경기 3골), 이운재(132경기 114실점), 이영표(127경기 5골)가 먼저 100경기 기록을 찍었다. 센추리클럽 가입 태극전사 중 박지성보다 월드컵 본선 경험이 많은 이는 홍명보와 황선홍, 이운재. 박지성이 2002 한일월드컵부터 3차례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홍명보와 황선홍, 이운재는 총 4차례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박지성의 발자국이 가장 선명했다.
미드필더 박지성은 선배들보다 득점 수가 적었고, 월드컵 본선에서 딱 3골만을 기록했지만 임팩트가 너무나 강했다. 박지성의 득점이 곧 한국축구의 새로운 역사로 이어졌다. 그는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1-0 승)과 경기에서 16강을 확정 짓는 결승골을 터트렸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아트사커' 프랑스를 상대로 귀중한 1-1 동점골을 넣었다. 그리고 2010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그리스전(2-0 승)에서 쐐기골을 넣어 월드컵 첫 원정 16강 진출에 디딤돌을 놓았다. 월드컵 3개 대회 연속골은 아시아 선수 중에는 어느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 남아공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았던 박지성은 '박지성 시프트'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기도 했다.
박지성은 '엘리트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온 영재가 아니라 꾸준한 노력으로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킨 '범재'라는 점에서 후배들에게 더욱 귀감이 됐다. 1999년 명지대와 올림픽대표팀간 연습경기에서 잠재력을 인정 받았던 박지성은 다른 또래들보다 뒤늦게 태극마크를 달았다. 청소년대표팀 경력도 없었던 박지성이 올림픽대표팀 멤버가 된 것.
2000년에는 청소년대표팀(19세 이하), 올림픽대표팀, A대표팀에서 모두 뛰기도 했다. 당시 한국축구의 미래로 칭송 받았던 이천수(오미야)와 최태욱(FC서울) 등의 또래들이 대표팀에서 단명했던 것과 달리 박지성은 무려 11년 동안 롱런하면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특유의 성실성으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한국축구의 에이스로 발돋움한 박지성의 성공기는 태극마크를 꿈꾸는 어린 후배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스토리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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