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동에 사는 우 선배에게 이원수 선생 호적부에 있는 마산부 오동리 80번지가 어디인지 부탁했는데 답이 왔다. 오동리 80번지를 찾았다는 것이다. 이원수 연구가 박종순 박사는 그 주소에서 2년 뒤 71번지로 다시 이사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원수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는 즉시 오동리 80번지와 71번지를 찾아 나섰다.
신삼호 건축사가 길라잡이를 맡았다. 오동동은 이미 낡아버린 지도 같았다. 고교시절 우리에게 신천지였던 오동동 아케이드도 문을 닫았다. 그 뒤편에 선생이 1922년 진영에서 이사 온 오동리 80번지가 있었고 골목을 돌아나가자 24년 다시 이사 간 오동리 71번지가 나왔다.
80번지는 많은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고 71번지는 4개로 분할돼 있었다. 좁은 골목길이었는데 길이 확장될 때 다행스럽게도 71번지는 온전하게 남았다. 우리는 환호했다. '고향의 봄' 창작 터는 85년 긴 세월동안 제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산부 오동리 71번지.
어린 문사 이원수가 신문과 잡지 등에 작품을 투고할 때 쓴 주소였다. 우리는 그 자리에 창작 터 표석을 세울 것이다. 4월 '고향의 봄' 발표 85주년을 맞는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70번지로 바뀐 이 주소를 찾아 뜻있는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곳에서 선생을 기릴 것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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