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충북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한 다세대 주택의 뒤편 쪽방.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인 론클리오 수잔나(43)씨는 밖에서 들리는 둘째딸(6)의 비명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절제 수술을 받은 가슴 부위가 욱신거리고, 머리는 핑 돌았다. 겨우 몸을 추스린 그는 만성 신경장애로 걸핏하면 기절하는 딸의 뺨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건강해야 널 지켜주는데…미안하구나."
수잔나씨는 지난달 5일 충북대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극심한 흉통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암 선고를 받았지만, 사실 그는 이미 자신의 병을 감지하고 있었다. 3년 전부터 가슴에 멍울이 잡히고 통증이 심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병원 검진은 엄두도 못 내고 진통제로 버텼다.
8년 전인 2003년 5월 수잔나씨는 종교단체 소개로 만난 남편(47)과 함께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후 딸 둘과 아들을 낳고 오붓한 가정을 꾸린 그는 밤낮으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다. 그러나 팍팍한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다. 1,800만원짜리 단칸방 전세에서 살며 다섯 식구의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었다. 지난해 말 청주산업단지 내 봉투제작 공장에 어렵게 취직했지만 항암 치료로 나가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병환으로 누워 생계마저 곤란해졌다. 콘크리트 업체에 일용직으로 다니던 남편이 지난달 19일 작업 중 늑골을 크게 다쳐 서너 달 거동이 힘들어졌다. 하지만 그는 절망할 여유마저 없다. 빨리 완치돼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서 시집 와 광주광역시 소촌동에서 사는 춤찬나(27)씨도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월세 15만원짜리 월셋방에서 남편(41) 아들(4)과 사는 춤찬나씨의 한 달 생활비는 집 근처 해맑은운동화 자활사업단에서 받는 월급 62만원이 전부다. 세 식구의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해 난방은 생각지도 못한다. 그가 운동화 세탁소에서 일을 한 것은 지난해 12월. 교통사고로 직장을 잃고 9개월째 누워 있는 남편을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쥐꼬리만한 남편의 실업수당 지급마저 끊기면서 생계는 더욱 막막해지고 있다.
힘들게 타국 땅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수잔나씨와 춤찬나씨 가정에 모처럼 따뜻한 손길이 전해졌다. 설 맞이 사랑나눔 행사를 주관하는 한국일보와 내고장사랑재단이 수잔나씨와 춤찬나씨 가정에 각각 300만원, 220만원의 의료ㆍ생계지원을 한 것이다. 이번 사랑나눔 행사에선 각계의 추천을 받은 327개 불우ㆍ소외가정에 총 3억3,000만원의 성금이 전달됐다.
수잔나씨는 "도와주신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고 말했다.
청주=한덕동기자 ddhan@hk.co.kr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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