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목욕탕에 간 스님이 옆에 어려 뵈는 사람에게 등을 밀어달랬어요. '당신 뭐요' 그러기에 '나 중인(중2)데' 했답니다. 상대가 뭐라고 했을까요. '난 중3인데 어디 건방지게'라고 막 호통을 쳤다지 뭡니까 글쎄. 하하하."
식상하고 썰렁할 법한 유머에도 어르신들은 박장대소했다. 설 연휴를 앞둔 1일 서울 중구 신당동 데이케어센터. 웃음치료사 오원구(64)씨의 입담에 중풍 등 노인질환을 앓고 있는 어르신 10여 명이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지었다.
복지관이나 종합병원 등을 돌며 웃음을 선사하는 '행복 전도사' 오씨는 설 명절이 다가올수록 각종 사회복지시설에서 섭외 요청이 쇄도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설날인 3일에도 차례만 지내고 한양대병원에서 특강을 할 정도로 스케줄이 빡빡하다. "명절에도 집에 갈 수 없는 환자분들은 얼마나 답답하겠어. 가서 재롱 좀 피워야지."
30여 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을 남을 위해 보내기로 한 게 2006년. '웃음을 통해 건강과 행복을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한 뒤 웃음치료사를 선택했다. 자비(100만원)로 학원까지 다니며 유머 강좌를 들었다. "처음엔 떨리기도 하고 쉽지 않더라고.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고 지금은 넉살도 늘고 '말발'이 좀 돼. 허허."
1시간의 특강을 위해 3~4시간 준비는 기본. 인터넷을 뒤져 눈에 띄는 재미난 이야기를 수첩에 적기도 하고 흘러간 가요, 최신 트로트도 빠짐없이 익힌다. "한양대병원 암환자 병동에 간 적이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이미자씨를 좋아한다며 며느리가 노래를 부탁하더라고." 이후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는 그의 애창곡이 됐다. "환자분들이 '저녁 줄 테니 밤12시까지 있다 가라'고 졸라서 혼나기도 했지. 그래도 잠시나마 아픔을 잊게 해줘 나도 기분이 좋고."
연휴가 분주한 사람은 오씨뿐만 아니다. 긴 연휴로 해외여행객이 많아진 탓에 여행사도 '비상대기'다. 여행사 직원 김찬영(25)씨는 "현지에서 '길을 잃었다' '룸 예약이 다르다' 등 갑작스럽게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아 집에 있어도 쉬는 게 아니다. 항상 휴대폰을 옆에 끼고 대기할 정도"라고 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나 열차 기관사는 남들을 위해 설 연휴를 반납한다. 종로구 적십자병원 수간호사 백모(45)씨는 연휴에 쉬는 날이 토요일(5일) 단 하루. 신혼 때 임신한 상태로 명절 근무를 해 고충을 잘 안다는 백씨는 "시어머니와 서울에 살아 후배간호사들 배려 차원에서 자원했다"며 "명절에 쓸쓸함이 더해서인지 최근 응급실 환자 중 혼자 사는 노인들이 늘어났다"고 안타까워했다. 25년 차인 코레일 백승훈(45)기관사는 "추석과 설 통틀어 지금껏 7번 정도 고향(남원)에 내려갔다"며 "나 같은 사람이 일을 해야 더 많은 분이 고향에서 명절을 잘 즐길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시험이 코 앞에 닥친 취업준비생과 고시생에게도 설 연휴는 남의 얘기다. 다음달 교육공무원 시험을 앞둔 홍모(26)씨는 "강동구 둔촌동이 집이지만 오가는 시간조차 아까워 건국대 앞에 자취방을 따로 얻을 정도"라고 했다.
"수험생 달력은 일반인과 달라요. 2월엔 사법고시(19일) 변리사 회계사(27일) 시험만 있지 명절은 없어요." 그의 푸념에 어깨도 축 쳐졌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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