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근 지음
글항아리 발행ㆍ368쪽ㆍ1만6,000원
동아시아 사상에서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는 인(仁)이라는 개념은 그 역사가 무려 3,000년이나 된다. 일반인에게는 '어질다'라는 뜻이 익숙하지만 그 의미는 시대가 흐르면서 크게 바뀌어 왔다.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가 쓴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에서는 인의 전개 과정을 공자 이전부터 근대의 최한기, 캉유웨이(康有爲)에 이르기까지 11단계로 나눠 그 흐름을 살펴본다. 사람다움이란>
저자는 우선 仁을 '어질 인'이 아니라 '사람다울 인'으로 바꾸어 읽기를 제안한다. '어질다'라는 말은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행이 높다"는 복합적 뜻을 갖고 있어 설득력이 없다는 설명이다. 仁을 '사람답다'로 옮기면 영어 번역어 'humanity'와도 잘 어울린다. 그렇다면 인의 역사는 곧 사람다움의 역사이기도 한 셈이다.
인이라는 글자가 나타나 있는 최초의 문헌자료는 기원전 743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시경> 과 <서경> 이다. <시경> 에서는 고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말을 탄 사람을 두고 '아름답고 인하다'고 표현한다. 인의 최초의 의미는 세상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공적 공간에서의 장식, 언행, 특출한 능력을 발휘해 주위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매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시경> 서경> 시경>
공자(기원전 551~479)는 인의 의미를 확대해 나를 닦아서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는 수기안인(修己安人), 즉 세습적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자기 수양으로 풀이했다. <논어> 에서 인은 철저하게 이러한 맥락에서 쓰였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공자의 이런 관점은 요즘 고위공직자에게 비교적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논어>
<맹자> 의 인은 <논어> 의 인과 달리 철저하게 마음과 관련된다. 앞으로 가면 우물이 있는데도 어린아이가 계속 나아가는 유자입정(孺子入井)의 상황에서 누구든 아이를 구하겠다는 순수한 생각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는 순수한 마음, 즉 도덕감정을 인으로 본다. 논어> 맹자>
한나라의 동중서는 인을 기 및 음양사상과 결합시켜 자연과 사회 전체에서 생명이 가득 넘치게 하는 하늘의 의지이자 사람이 본받아 지상에 실현해야 하는 과제로 보게 된다. 이 단계의 인은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에 견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어 송나라와 명나라에서 성리학이 발달하면서 인은 형이상학적 특성을 갖게 돼 신성과 같은 본성, 즉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지휘하는 이끌어 가는 감독의 역할을 맡게 된다. 청나라에 오면 인의 개념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잘 습관화한 행위와 그로 인해서 늘어나는 공동체와의 통합을 가리키게 되며, 캉유웨이에 이르면 사람 사이, 나라 사이의 소통을 증대시키는 심력(心力)으로 바뀌게 된다.
한국에서의 인의 전개 과정을 처음으로 고찰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초기 단계의 인이나 맹자의 인은 한국의 고문헌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다. 주로 <좌전> 과 <논어> , 그리고 성리학의 인 개념이 주로 수용됐다. 조선 후기에 들어 인의 개념이 독자적으로 발전하는데 정약용은 형이상학적인 맥락을 걷어 내고 사람이 자연적,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해 내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인의 역사는 사람들이 추종하는 이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의 소산이라는 점을 새삼 일깨운다. 논어> 좌전>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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