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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거인과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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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거인과의 화해

입력
2011.01.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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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높은 담이 있는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무서운 거인이 살고 있었다. 거인은 자신의 정원에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싫어했다. 거인이 문을 닫고 살아서 그 집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나무들이 꽃을 피우지 않았다. 그런데 그 거인의 정원에 아이들이 다시 뛰어놀면서 봄이 오고 꽃이 핀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길 국민학교 시절의 저학년 때 교과서에서 읽었다. 줄거리에 대한 기억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거인이 주는 공포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공포 때문에 나는 지금껏 그 이야기를 기억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건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을 요약한 것이었다.

최근에 오스카 와일드를 다시 읽으며 그 사실을 알았다. 국민학교 이후 처음으로 그 이야기의 지은이와 원전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평생 나를 두렵게 했던 거인과 화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의 정체를 알면 새롭고 반갑다. 가령 연애편지에 단골로 사용했던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보는 것이 아니다.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가 생텍쥐페리의 작품에서, '슬픔과 우울은 언제나 혼자 않는다. 뒤에서 떼를 지어 몰려온다'가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나왔다는 것에 깜짝 놀란다. 책을 읽다 오래되어 익숙한 것들의 주인을 만날 때마다 독서가 평생교육이라는 것! 새삼 배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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