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검찰의 고질적인 향응ㆍ접대 문화가 폭로되는 시발점이 된 '스폰서 검사'와 '그랜저 검사' 사건에 대한 판결이 한꺼번에 나왔다. 특별검사가 기소한 스폰서 검사 4명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이 재조사해 구속했던 그랜저 검사에게는 징역형이 선고됐다. 스폰서 검사 특검에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민경식 특검팀에 대한 비판론, 특검 무용론이 다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우진)는 28일 건설업자 정모씨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향응 접대를 받은 혐의(뇌물 수수) 등으로 기소된 한승철 전 대검 감찰부장과 김모 부장검사,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된 이모 검사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같은 혐의로 기소돼 무죄 판결을 받은 정모 부장검사를 포함하면 민경식 특검팀이 기소한 검사 4명 전원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재판부는 한 전 부장이 택시비로 100만원을 받고 룸살롱에서 술을 마신 뒤 정씨가 대신 술값과 화대를 지불한 것은 사실로 봤지만, 뇌물죄 성립을 위한 청탁과 직무관련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씨는 4~5년간 왕래가 없다가 2009년 1월 한 전 부장을 만났고,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동석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구체적인 사건 청탁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식사와 현금 100만원이 사건 청탁 명목으로 주는 돈이라고 인식할 정도로 고액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김모 부장검사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대검에 접수된 검사 접대 관련 고소장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부산지검으로 내려보낸 한 전 부장과 이 사건을 각하 처리한 이 검사의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는 "고소장의 주요 내용이 모 교도소장에 대한 처벌을 구하는 것이고, 의도적으로 직무를 포기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접대에 참여했던 이 검사가 재배당 건의도 않은 채 스스로 사건을 처리하고, 회식 자리에 제3자를 대동해 식대와 술값을 지불하게 한 것은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날 같은 법원 형사합의23부(부장 홍승면)는 건설업자 김모씨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께 그랜저 승용차와 현금 4,600여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구속기소된 이른바 '그랜저 검사' 정모 전 부장검사에게 징역 2년6월에 벌금 3,514만여원과 추징금 4,614만여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는 김씨가 고소한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에게 김씨 쪽에 유리하도록 조언 내지 부탁을 했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수사는 최종 결론뿐 아니라 과정 역시 공명정대해야 한다"며 "고소인으로부터 거액을 받는다면 일반 국민들이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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