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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거미 여인의 키스'/ 동성애자와 반정부주의자… 두 남자의 파격적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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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거미 여인의 키스'/ 동성애자와 반정부주의자… 두 남자의 파격적인 사랑

입력
2011.01.2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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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떠올릴 때마다 난 행복할거야. ” 정치 사상 이념에는 전혀 관심 없는 동성애자 몰리나가 애인 발렌틴을 포옹하며 하는 말이다. 한편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여기는 발렌틴의 대꾸는 그 순간에도 과연 사뭇 정치적이다.

“다른 사람들이 널 무시하지 않도록 행동하고, 아무도 널 함부로 다루게 하지 말고, 착취당하지도 말아. 한 얘기 또 해서 미안해. 네가 별로 좋아하는 말이 아닌데. 몰리나,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악어컴퍼니의 ‘거미 여인의 키스’는 인간의 은밀한 욕망과 정치적 목적이라는 극단적 계기를 아르헨티나의 작은 감방 속에 밀어넣고 세세히 관찰한 보고서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은 후 공산주의에 심취해 혁명가의 길로 들어선 발렌틴, 빈민층 출신으로 영화와 사랑 이외의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몰리나. 무대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라는 변수를 개입시킨다.

둘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있었음이 두 사람의 동태를 꼬치꼬치 보고하는 기관원의 목소리로 흘러나온다. 통제 사회의 인간 말살 가능성도 이 극이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는 문제다. 잔인한 고문과 공작 정치 등 엄존하는 3세계 독재 국가의 통치 방식을 경험적으로 학습한 한국의 관객에게 이 극은 색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한편 남미의 정치 현실과 과거 한국과의 묘한 위상차가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내가 가장 고귀한 세상의 일부가 된다는 것. 모두가 평등하고,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억압하지 않는 세상의 일부. 내 몸이 감당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할 때조차도 나를 견디게 해 주는 힘. (속삭이듯) 맑시즘.” 발렌틴의 말이다. 지난 시절 이 땅의 투사들도 저러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자들이 동성애자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 넌지시 물으며 다가오는 무대다.

개그맨에서 뮤지컬 배우로 성공적 변신을 이룬 정성화, 영화와 뮤지컬을 넘나드는 최재 등 두 사람이 펼쳐 낼 긴박한 호흡이 기대된다. 마누엘 푸익 작, 이지나 각색ㆍ연출. 2월 11일~4월 24일 아트원씨어터 1관 (02)764_8760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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