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 는 미국의 선별적 의료복지와 영국의 보편적 의료복지를 비교한다. 미국 노동자는 손가락 두 개가 잘렸지만 비싼 보험에 들지 못해 한 개만 봉합해야 한다. 보험이 없어 아프지 않기만 기도하는 서민은 5,000만 명이다. 매년 2만 명이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다. 식코>
1인당 의료보험 지출이 7,000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인이 왜 가장 낮은 의료를 받는가?
선별적 복지의 비효율성
보험료의 31%는 행정에 사용된다. 개별 치료의 보험적용 여부는 1,000 곳이 넘는 보험회사와 수 만가지 상품마다 다르다. 접수 직원은 진료실보다 더 많다. 이들은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환자 자격을 일일이 확인한다. 아무리 급해도 접수가 완료돼야 진료가 시작된다.
의료보험 회사들은 이윤을 따지며 온갖 수단으로 보험금 지불을 거부한다. 영화는 7년 동안 보험료를 냈던 환자의 췌장이식수술의 보험처리가 왜 거부되었는지 고발한다. 결국 환자는 죽었다. 이를 뒤에서 돕고 배 불리기에 급급한 정치인과 제약회사들을 폭로, 선별적 복지의 비효율성과 비효과성을 보여준다.
영국에서는 모든 국민이 언제든 원하는 진료를 받는다. 1인당 의료보험 지출은 미국의 5분의1이다. 보험자가 국가 한 곳이기 때문이다. 접수는 환자 정보만으로'한 번에' 끝난다. 보험료의 1.3%만 행정에 사용된다. 평균수명은 미국보다 더 길다. 심지어 극빈자가 미국 부자보다 더 오래 산다. 영아사망률도 더 낮다. 보편적 복지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국민의 건강을 지킨다.
미국은 의료정책도 개인의 자유선택권을 지향하지만, 영화 속 모습은 충격 그 자체다. 9ㆍ11 테러 당시 몸을 사리지 않고 시민의 목숨을 구한 후유증으로 심각한 질병을 앓으면서도 진료를 받지 못한 구조대원들은 결국 보편적 의료복지를 찾아 쿠바로 건너가 따뜻한 치료를 받는다. 이 영화는 보편적 복지가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가 낮을 것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반드시 무상이어야 하는 것도 아님을 가르쳐 준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연초 TV 프로그램 '1박 2일'은 이주노동자 다섯 분에게 그리던 가족과의 깜짝 상봉을 선물로 제공했다. 일요일 오후 안방극장은 짠한 감동으로 가득 찼다. 성실히 살지만 소외된 분들과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출연진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취지는 아름답다. 시청자들도 차가운 편견을 깨고 따뜻한 마음을 열 기회를 새해 선물로 받았다.
아쉽게도 이것이 바로 선별적 복지의 모습이다. 선물을 받는 이주노동자 선정은 극히 제한적이고 차별적이며, 본인의 선택이나 동의에 기초하지 않고 새해 아침을 위해 기획된 일시적 혜택에 불과하다. 보편적 복지는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이 분들의 권리와 욕구에 기초하여 일관된 법률적 기준과 합리적 재정으로 가족 만남의 기회가 자리매김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행 법은 미숙련 이주노동자 가족의 입국을 금지한다. 그러나 어린 자녀를 방임할 수 없어 불법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입국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녀는 결국 불법체류자로 의료 교육 등의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상호 보완으로 사회통합 지향을
정부는 이주노동자와 가족의 결합 등 권리보장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하고 법을 고쳐야 한다. 또 고용주 및 이주노동자와 비용을 분담해 가족과 결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는 복지를 제공하는 기준과 대상에 따라 구분되며, 정책적 의지와 소득 재분배 수준에 따라 보편적 복지로 확대 발전되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분야에 따라 선별적ㆍ치료적 접근과 보편적ㆍ예방적 접근이 병존할 수 있다. 양자 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권리와 욕구에 기초하여 상호 보완을 통해 사회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 <식코> 가 보여준 보편적 복지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식코>
이혜원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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