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춥고 시절은 어려워도 설날 명절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찾아오는 모양이다. 좁은 시골길을 따라 커다란 택배차량이 찾아오고 돌담길을 돌아오는 우체부 오토바이에는 우편물보다 크고 작은 소포가 수북하게 실려 있다. 내가 보내는 것도 아니고 내게 오는 것이 아니지만 그런 풍경에 괜히 즐거워진다.
전업시인을 자처하며 10년 넘게 빈 주머니를 자랑하며 은현리에 살 때 나는 세상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신세를 졌다. 하여 이맘때면 나에게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친구의 우정이 있고 제자의 인사가 있어 마음이 따뜻해졌지만, 앉아서 받기에 송구스러운 사랑도 있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보내드리며 인사해야 할 스승이나 어른께서 보내주시는 명절선물은 받으면 목부터 메었다. 시 써서 밥이나 먹는지 걱정해주는 세상의 따뜻한 손들이 있어 늘 마음의 주머니가 두둑했다. 그 주머니 속의 선물들 내가 살면서 갚아야 할 빚이 되었지만 아직은 발만 동동거리고 있어 미안할 뿐이다.
어제는 축제 관련 회의가 있어 울산 시내에 나가있었는데 택배가 왔다는 전화가 왔었다. 나무우체통 곁에 두고 가라 해놓고 늦게 돌아와 보니 동네 고양이들이 모여 잔치를 하고 있었다. 여수에서 권 선생님이 보낸 주신 멸친데, 왜 너희들만 선물 주고받느냐며, 상자를 뜯어 선물(膳物)에 들어있는 착할 선(善)을 나눠 먹고 있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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