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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 문화 예술…현대판 '악학궤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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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 문화 예술…현대판 '악학궤범' 나왔다

입력
2011.01.2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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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거_참 누년의서방인지 계집의속은무던히태워주겟다… <남> 남바위밋헤오_바입은녀편네는꼴불견안이구 <여> 상투쟁이외투입은것은엇더쿠"(김영환 김선초 '넌센스 꼴불견전집(상)'ㆍ1932 콜럼비아 발매).

20세기 전반 한반도 대중문화와 공연 예술의 전모를 보여 주는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됐다. 동국대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단은 27일 "1907년부터 45년까지 국내에서 유통된 거의 모든 현존 유성기음반 자료를 집대성한 <한국 유성기음반> (전 5권)을 발간하고 디지털아카이브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연구단은 수정ㆍ보완 작업을 거쳐 7월부터 검색 기능을 갖춘 디지털아카이브의 공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유성기음반은 19세기 말부터 LP가 등장하기 전까지 60여년 동안 음향 기록을 위해 사용된 매체다. 대한제국 시절부터 해방 때까지 한반도에서는 약 6,500매의 유성기음반이 발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생산자는 일본빅터 일본콜럼비아 일본오케 타이헤이 일본폴리돌 시에론 등 6개 음반사가 중심이다. 왁스 재질의 유성기음반 한 장에 기록할 수 있는 음향은 3분~3분 30초 정도의 양으로 1907~45년 기록된 음향은 총 1만3,000여종(곡)에 달한다.

연구단이 음원의 형태로 수집해 아카이브에 포함시킨 양은 이 가운데 5,000여종이다. 대중가요가 절반 가량 되고 판소리 민요 잡가(雜歌) 궁중음악 등 전통음악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연극, 난센스(만담ㆍ오늘날의 코미디), 교육용 레코드 등이다. <한국 유성기음반> 와 디지털아카이브에는 음원의 내용과 함께 레코드사의 기록, 레이블 이미지, 신문과 잡지의 기사 및 광고 등 관련 자료가 망라돼 있다.

연구단장인 배연형 동국대 문화학술원 교수는 "기록물은 문자 영상 음향 세 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음향 자료에 대한 집적과 연구는 사실상 공백 상태였다"며 "이번에 구축된 데이터베이스가 근대사회를 이해하고 대중 정서의 형성 과정을 보여 주는 근대의 <악학궤범> 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음향 자료는 특히 대중문화의 비중이 높아 문헌으로는 추측하기 힘들었던 당시의 유행과 대중의 일상을 연구하는 데 결정적 사료가 된다"고 덧붙였다.

연구단은 음반 발매와 그것을 소개하는 신문 잡지의 기사와 광고로 대중문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아카이브에서 '신불출'을 검색하면 153건의 음반이 검색된다. 만담가 신불출(1905~?)의 높은 인기는 대중예술가로서 재능뿐 아니라 난센스를 통해 당시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연구단은 "가수 이난영(1916~65)의 음반이 발매되면 30~40회의 광고가 게재됐고, 판매량도 오늘날의 밀리언셀러에 해당하는 1만장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아카이브는 전통음악의 변천 과정을 연구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배 교수는 "유성기음반들을 들어 보면 동편제와 서편제의 구분법, 남도소리가 북쪽으로 흘러갔다는 기존의 관점 등이 사실과 큰 차이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상 사라져 버린 북한 지방의 서도 소리도 이 음반들을 바탕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성학과 근대사 연구에도 유성기음반은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용 레코드 속 경성제대부속학교 학생들의 억양은 오늘날의 서울말보다는 오히려 북한 지역에서 쓰이는 말의 억양과 닮아 있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1912~2002)이 일제의 선전 수단으로 쓰였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1936년 콜럼비아에서 발매된 '우승의 감격' 음반에는 "멀리 일장기가 보이는 순간부터 힘이 솟았다"는 그의 육성이 담겨 있다.

<한국 유성기음반> 출판은 수림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단은 28일 책 출간을 기념해 동국대에서 '동아시아 고음반 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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