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에 이어 이집트에서 반독재 시위가 이어지면서 미국의 대 아랍권 외교정책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민주주의를 좇자니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친미 국가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발호할까 걱정이고, 그렇다고 독재자들을 마냥 옹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1981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집권 이후 아랍권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중동평화협상 과정에선 미국을 도와 중재를 맡기도 했다. 미국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매년 13억 달러 상당의 군사원조를 하고 있고, 75년 이후 경제개발 지원 총액만 280억달러에 이른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 전했다.
하지만 25일부터 이집트에서 민주화 시위가 이어지면서 미국의 고민이 시작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면서도 아랍권 친미 국가에 대해선 독재를 사실상 묵인해온 정책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당장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25일만 해도 “이집트 정부는 안정적”이라고 했다가 하루 뒤에 “평화적 시위를 막아선 안 된다”라며 강하게 나간 것도 미국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미 뉴욕타임스도 “이 지역의 혼란이 미국의 외교정책을 뒤흔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미국이 찾은 것은 모호한 타협책이다. “우리는 당분간 이집트 시위대와 대화를 하겠지만 동시에 정부 관리에게는 개혁을 부추기는 ‘양자 병행 접근법(a dual-track approach)’을 추구할 것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가 이날 미 행정부 관리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이 같은 표리부동의 접근법은 이 지역에서의 민주주의 개혁이 종종 이슬람계 발호의 계기가 된 경험 때문이라고 WP는 덧붙였다.
FT도 미국이 이집트 시위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유혈진압 아니면 이집트 이슬람계 야권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의 득세라고 분석했다.
다른 서방국가의 태도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연합(EU)은 “이집트 정부는 국민의 변화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어정쩡한 입장만 내놓은 상태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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