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이 26일 '우리 술 이야기'라는 홍보자료를 내고 "우리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세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진청은 이 자료에서 우리나라의 최초 술은 <제왕운기> 에 기록된 '해모수와 유화의 합환주'라고 했다. 이후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백제 사람 수수보리가 일본에 양조 기술을 전파하는 등( <일본고사기> 인용) 많은 발전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본고사기> 제왕운기>
특히 조선시대에 우리 술은 최고 전성기를 맞는데 문헌에 기록된 술만 340여 개에 달할 정도로 가문마다 집에서 빚은 가양주(家釀酒)가 성행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제치하 주세법이 시행(1916년)되면서 다양한 우리의 술은 불법 단속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자가 제조 면허자 수는 1916년 37만명이었다 1926년 13만명, 1929년 265명, 1934명에는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게 됐다.
농진청은 "일제 치하와 한국 전쟁 이후 농산물의 부족으로 인해 우리 고유 술은 거의 사장됐다"고 분석했다. 농진청은 서울 문배주, 경기 강홍로, 강원 강자술 등 지역 여건에 맞는 명주를 키워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원 대보름 아침에 마시는 귀밝이술, 머슴의 날(2월1일) 주인이 술을 빚고 음식을 나눠 줬다는 머슴주, 국화전과 함께 즐겼다는 중양절 술(9월9일) 등 조상들이 절기별로 마셨던 전통주를 다시 찾아야 할 절기 술로 정해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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