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한 신문사 우편물실에서 일하는 걸리버(잭 블랙)는 인생의 목표가 딱히 없다. 기자를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하고, 여기자 달시(아만다 피트)에 연정을 품고 있지만 만사에 우유부단하다. 그는 얼떨결에 사내 여행기자 모집에 지원, 버뮤다 삼각지대 취재에 나선다. 걸리버는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는데 눈을 떠보니 소인들이 그의 가슴 위를 거닐고 있다.
제목이 말하듯 영화 ‘걸리버 여행기’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동명 고전 소설을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별 볼일 없고, 야심조차 없는 사내가 소인국 릴리풋에서 영웅으로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우스개로 묘사한다.
이야기 틀은 원작과 별반 다르지 않다. 뉴욕의 배불뚝이 루저가 스니커즈를 신고 소인국을 활보하다 자아를 찾고 사랑까지 차지한다는 내용 정도가 차이점. 별스럽지 않은 내용인데 이야기도 찰기 있게 진행되지 않는다. 장면과 장면이 개연성과는 무관하게 얼렁뚱땅 이어지는 ‘묻지마 전개’ 전략을 택한다. 마치 뻔한 내용인데 서사에 그리 비중을 둘 필요가 있냐고 되묻는 듯한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87분에 불과하다.
재미를 던지는 건 여러 눈요기거리와 잭 블랙의 코믹 연기다. 인간이 소인국에 갔을 때 벌어질 기기묘묘한 상황은 컴퓨터그래픽에 힘입어 구체성을 얻는다. 걸리버가 소변으로 불을 끄거나, TV 모양의 무대 위에 ‘스타워즈’와 ‘타이타닉’, ‘아바타’를 조합한 공연물을 올리는 장면 등이 잔재미를 준다. 소인국에 ‘G패드’와 ‘걸빈 클라인’을 유행시키고, 도심을 뉴욕 타임스퀘어처럼 장식해내는 장면도 작은 웃음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화력 센 무기는 블랙의 우스꽝스러운 연기다. 그는 넉넉한 몸매와 무사태평한 얼굴만으로도 웃음을 끌어내는 재주를 지녔다. 그가 불룩한 배로 적국의 포탄을 튕겨내거나, 잠시 유배된 거인국에서 여자 아이 옷을 입고 난처한 표정을 짓는 모습 등은 어린 관객들의 폭소를 불러낼 만하다. 감독 롭 레터맨. 27일 개봉, 전체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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