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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아찔한 장밋빛 '녹색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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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아찔한 장밋빛 '녹색 일자리'

입력
2011.01.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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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일자리(green job)가 대세다. 환경을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산업혁명의 잿빛 일자리가 아닌 녹색 일자리다.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50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조언하던 반 존스의 '그린칼라 이코노미'의 제안은 담대하고도 낙관적이다.

그런데 재생에너지와 철도산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요즘 광고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파트도 녹색이고 공장도 녹색이다. 만들던 물건과 하던 일을 그대로 계속하는데, 호칭만 바꾸면 녹색 일자리가 되는 것일까? 정부와 기업의 청사진은 푸른색이 아니라 아찔한 장밋빛이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을 참고 삼아 이명박 정부가 2009년 1월 발표한 '녹색뉴딜'은 더욱 그렇다. 2012년까지 4대강 살리기 등 36개 사업에 50조원을 투입해 96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일자리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결국 12개 사업으로 축소되었지만, 작년 7월까지의 정부 추정통계를 믿더라도 창출된 일자리는 겨우 14만 228개다. 물론 그 일자리들이 녹색뉴딜 사업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녹색 일자리이지 실제 무엇을 하는 일자리인지, 그리고 급여와 고용 안정성이 어떤지는 정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녹색뉴딜의 많은 사업들이 기존의 숲 가꾸기나 R&D 사업을 재분류한 것임을 감안하면, 14만여 개의 일자리도 다수는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아니다.

녹색뉴딜로 새로 만들어지는 대규모 일자리가 있다면 그것은 '4대강'사업이다. 물론 그것이 녹색 사업인지를 완전히 논외로 한다는 전제에서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이 총 34만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홍보했다. 건설업의 취업 유발계수인 10억원 당 17.3명을 4대강 사업 예산 규모인 19.4조원에 곱한 결과다.

그러나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가 조사한 바를 보면, 작년 5월 중순까지 공사현장 투입인원은 1만364명이고 그 중 상용직은 고작 130명뿐이었다. 4대강 사업은 건설 중장비가 주로 투입되기 때문에, 건설업의 취업유발계수 적용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 대신 700여명의 골재채취 노동자, 2만4,000여명의 농민, 그리고 가족까지 감안하면 최대 6만4,000여명이 생계터전을 잃었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에 대해 정부가 반박자료를 내놓았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녹색 전환은 절망 끝에서 희망을 향해 다가가는 몸부림이다. 그만큼 어딘가에서는 고통과 희생이 요구되며, 그것을 경감하고 보충하기 위한 사회적 공감과 투자가 필요하다.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있다면, 어딘가에서는 사라지는 일자리와 직장을 바꾸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과거의 오염산업에서 녹색산업으로의 전환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국제 노동운동에서는 이러한 산업 전환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고 지역사회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지원 제도와 재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녹색성장은 녹색이라 스스로 명명한 것들을 개발하고 수출하며 앞으로 달려가느라 바쁘다. 녹색 일자리의 장밋빛을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와 투자와 때로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한 결과다. 정부의 녹색일자리 성적표가 당장 초라하다는 것보다 환경정의와 경제정의에 대한 문맹이 더 걱정스러운 이유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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