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합동브리핑룸. 벌써 두 달째 전국을 휩쓸고 있는 구제역의 두 대책 책임자가 단상에 올랐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구제역중앙사고수습본부장)과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에는 설 연휴를 앞둔 정부의 초조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두 장관은 "구제역이 경남까지 퍼져 안타깝다"며 "설 이전 예방백신 접종 완료 등 당국이 확산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축산농가 방문을 자제해 줄 것 ▦구제역 발생국가 여행을 삼가할 것 ▦소독과 방역에 협조해 줄 것 ▦소ㆍ돼지고기 소비를 계속해 줄 것 등 고향 방문을 앞둔 국민들의 '행동지침'도 강조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바로 전날(25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공식 역학조사 결과를 통해 이번 구제역 확산 과정에서 정부의 대응 실책이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자인했던 터. 다수 언론 보도로 이를 접하고 분개했을 국민 감정을 생각했다면 응당 고개부터 먼저 깊이 숙이고 협조를 구하는 게 순서 아니 었을까. 담화문엔 흔한 '사과'나 '유감'이란 표현조차 없고 이들은 끝내 사과 인사 한 번 하지 않았다.
구제역은 이제 가축질병을 넘어, 축산 농가들에겐 도저히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병'이 됐다. 현장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생지옥 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사과와 위로부터 하는 게 순서다. 해외여행이나 축산농가방문을 자제해달라느니, 소고기 돼지고기 걱정 말고 먹으라느니, 이런 것들을 얘기하기에 앞서, 구멍 뚫린 방역에 대해 머리부터 숙이고, 구멍 뚫린 농민 가슴부터 어루만졌어야 했다. 구제역 초동 대응에 실패했던 것처럼, 정부는 국민 마음을 달래는 데도 실기한 듯 싶다.
박민식 경제부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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