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글러브’는 25일까지 67만7,784명(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불러모았다. 이 기간 전체 영화관객의 34.9%를 끌어 들였는데 혹한 등 변수를 감안하면 꽤 좋은 초반 성적표다. 극장가에선 청각장애인 고교 야구부의 감동 스토리가 가족 단위 관객에게 먹혀 들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글러브’의 관람등급은 전체관람가다. 이 영화의 홍보마케팅사 이노기획의 김은성 대표는 “보고 나서 기분 좋은 영화라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
충무로에 가족영화가 뜨고 있다. 스릴러 등 이른바 센 영화들에 밀렸던 가족영화가 최근 잇달아 히트하며 충무로의 효자상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족영화가 힘을 얻으면서 ‘명절은 가족영화’라는 극장가 속설도 되살아날 조짐이다.
300만 관객을 코앞에 둔 ‘헬로우 고스트’(25일 기준 296만9,35명)는 가족영화의 부활을 상징한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헬로우 고스트’는 ‘황해’와 ‘라스트 갓파더’ 등 제작비 100억원대 대작들 틈바구니 속에서 연말연초 흥행대전의 왕좌를 차지했다. ‘헬로우 고스트’는 제작비 27억원의 경량급 영화다. 주연 차태현을 매개로 한 웃음과 감동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분석이 따른다.
‘헬로우 고스트’의 투자배급사 NEW의 박준경 마케팅 팀장은 “전쟁과도 같은 흥행 싸움 속에서 살아남은 ‘헬로우 고스트’를 보며 충무로가 여전히 안고 가야 할 (가족) 코드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NEW는 노년의 사랑을 그린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말기 암 환자인 중년 여인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상반기 연달아 공개하며 가족영화 붐을 이끌 기세다.
지난달 15일 개봉해 장기 상영되고 있는 3D애니메이션 ‘새미의 어드벤쳐’도 성공한 가족영화다. 25일까지 97만81명이 본 이 영화는 “연말연초 가장 실속을 챙긴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상규 CGV 홍보팀장은 가족영화의 잇따른 흥행에 대해 “지난해 쏟아져 나온 스릴러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족영화는 아무래도 타깃 층이 넓어 시장 규모를 키우기 적합하다”고 말했다. 이진훈 롯데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은 “최근 편안한 즐거움을 찾는 관람이 늘어난 듯하다. 가족 관객을 겨냥한 영화를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밝혔다.
가족영화는 이번 설 연휴 극장가의 화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상영작들이 ‘가족’을 내세운다. ‘타운’과 ‘환상의 그대’ 단 2편만 청소년관람불가다. 한겨울에 피비린내 진동하는 스릴러가 개봉하는 등 최근 몇 년 사이 충무로에 불어 닥쳤던 ‘계절 파괴’ 바람이 잦아들고 있는 것이다.
전체관람가인 ‘걸리버 여행기’는 노골적으로 가족 단위 관객을 겨냥한다. 15세 이상 관람가였던 ‘황산벌’의 속편 격인 ‘평양성’도 12세 이상 관람가를 받아 공략 대상을 넓혔다. 퓨전 사극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12세 이상 관람가)은 아예 설 연휴 가족 관객을 고려해 기획됐다. 15세 이상 관람가인 ‘그린호넷 3D’와 ‘상하이’도 가족 관객 공략 방법을 적극 모색 중이다. 한 영화인은 “가족영화는 목표 관객층을 잡기 어려워 애로가 있긴 하지만 명절 대목에 터지면 제대로 터질 수 있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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