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 및 미중 정상회담에 지구촌의 시선이 집중됐던 지난주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의 해외언론 초청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홍콩무역발전국이 주최하는 아시아금융포럼(AFF) 취재, 경제와 행정분야 주요 인사 연쇄 인터뷰 등으로 꽤 빡빡하게 짜인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주권 반환 14년째인 홍콩이 일국양제(一國兩制) 하에 중국의 비약적 경제성장을 기회로 삼아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30개국에서 1,700여명의 금융ㆍ경제 전문가들이 참가한 이번 제 4차 AFF의 주요 화두는 위안화의 세계화 문제였다. 포럼 참가자 가운데 존 피스 스탠다드차터드그룹 회장은 2020년 중국경제가 미국을 추월해 세계 금융발전을 주도할 것이라며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지는 못해도 달러만큼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정부측 참가자는 위안화의 기축통화 역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하기도 했다. 투자와 결제 수단으로서의 위안화 역할 확대는 토론의 단골 주제였다.
위안화 글로벌 금융센터 지향
홍콩 당국이 '중국의 글로벌 금융센터'를 새로운 발전 비전으로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제 화폐로서의 위안화 역할 증대를 적극 활용해 국제 금융분야에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이다. 홍콩 당국은 초청 해외언론인들에게도 바로 이러한 점을 적극 알리고 싶어했다.
1997년 주권 반환 당시만 해도 홍콩의 미래는 매우 불확실했다. 홍콩이라는 맑은 오아시스가 중국 사회주의의 흙탕물에 오염돼 큰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주권 반환 이후 홍콩은 고도의 자치보장 속에 중국의 경제발전에 힘입어 발전해왔다.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와 이번의 세계 금융위기도 중국의 경제력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넘어설 수 있었다. 2004년 중국과의 경제동반자협정 체결은 홍콩경제에 막대한 이익을 안겼다. 상호 투자와 무역, 여행객 급증으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다. 쇼핑의 천국이라는 홍콩의 상가는 중국 본토인들로 넘쳐나고 있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20년까지 상하이를 국제금융허브로 육성한다는 중국정부의 구상은 국제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입지를 위협하고, 양안관계의 호전은 무역과 물류, 관광 분야에서 홍콩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홍콩 당국은 위안화 역외업무 중심이 된다면 이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유럽연합 내에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가 상하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면 홍콩은 런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아시안금융포럼에서 위안화 역할 확대 문제가 집중 거론된 것도 이런 홍콩 당국의 구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하나의 국가주권 아래 두 체제를 양립시키는 일국양제의 효용성을 회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국 지도부가 대만과의 관계발전을 의식해 홍콩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안정에 우선 순위를 두고 각종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홍콩인들의 정치개혁 및 민주화 요구도 2017년 행정수반 직선, 2020년 의회에 해당하는 입법회의 보통선거 실시를 확정함으로써 상당 부분 수용했다. 이번에 만난 홍콩 헌법 및 본토업무 담당 장관은 일국양제가 별 문제 없이 작동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남북관계 시사점 생각해 봐야
그러나 이런 흐름 속에서도 홍콩인들이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얼마나 내면화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중화민족주의의 바람은 홍콩도 예외가 아니지만 젊은 층 중심으로는 그냥 홍콩인으로 남고 싶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한다. 문화와 사회 분위기의 지나친 중국화와 홍콩경제의 중국 의존도 심화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큰 무리 없이 이질적인 체제를 병립시켜 상호이익을 얻고 있는 그들의 선택과 노력은 평가 받을 만하고, 부러운 일이기도 하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홍콩과 중국의 일국양제 실험의 성공이 남북관계에 주는 시사점이 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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