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26일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강조한 부분은 “수험생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성급한 정책 검토로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연 2회 수능 시행안’을 백지화한 것도 ‘수험생의 부담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번 개편안의 핵심인 국어, 수학, 영어 과목의 수준별 시험 도입은 수험생들에게 필요 이상의 어려운 시험을 보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교과부 관계자는 “문과생에게 어려운 수학 시험을 치르게 하고, 이과생에게 어려운 국어 문제를 낼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있었다”며 “수준에 맞게 난이도를 선택하도록 해 부담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수험생들은 진학하려는 대학의 모집 단위에 따라 국어, 수학, 영어 과목에서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응시하면 된다. 다만 어려운 B형은 최대 2과목만 선택할 수 있고, 국어와 수학에서 모두 B형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했다. 교과부는 “B형의 선택과목 수를 제한하지 않으면 일부 대학은 국영수 모두 어려운 B형을 요구해 수험생의 부담이 지금보다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문과생들에겐 국어B형-수학A형을 기본으로 하고 영어에서 A,B형을 선택하는 조합, 이과생들에겐 수학B형-국어A형에 영어 A,B형을 선택하는 조합이 일반적인 예시로 제시된다.
하지만 형식적인 선택권을 줬다고 해서 학습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고교 신입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 조미경(45)씨는 “어차피 상위권 학생들은 난이도 높은 시험을 칠 수밖에 없고, 그에 대비해 어려운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중3이 되는 곽건호(14)군도 “선택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좋지만 부담이 줄 것 같지는 않다. 그 안에서 경쟁하는 것은 마찬가지라 수험생만 고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입시전문가는 “상위권 대학들은 어려운 B형 응시를 요구할 테고, 학생들도 쉬운 A형 보다는 대부분 어려운 B형을 목표로 공부하게 된다. 국영수의 학습 부담은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 입시에서 차지하는 수능의 비중이 여전히 높은 현실을 고려할 때 학생들의 수능부담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수능 과목수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감은 줄어들 수 있겠지만 다른 수험생보다 1점이라도 높은 점수를 받아야 대학에 갈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수험생의 부담이 줄 거라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난이도 조절 문제도 지적됐다. 현재 수능 체제하에서도 해마다 난이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주요 과목을 수준별로 구분해 출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교원단체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급격한 제도 변경에 따른 혼란과 학교 현장의 우려를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라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전국교직원노조는 “수준별 수능으로 교육과정이 국영수 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며 “국영수 수업시수의 상한선을 정하거나 국영수도 선택과목으로 채택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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