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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 속 노숙인' 한국일보 김현수기자 2박3일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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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 속 노숙인' 한국일보 김현수기자 2박3일 체험기

입력
2011.01.26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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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1호선 5번 출구를 사수하라" 저녁7시부터 '바람 없는 명당' 쟁탈전

영하 9도, 길을 나섰다. 내의와 귀마개, 장갑으로 무장했지만 삭풍은 매섭다. 한파주의보까지 따라붙었다. 일요일 밤 9시 바람소리가 적요한 거리를 찢는다. KTX서울역 3번 출구 앞에 그들 서넛이 담배꽁초를 줍고 있었다. 알량한 살점을 지닌 꽁초를 한두 모금 빨면 다시 주웠다. 빳빳한 담배를 건네자 그들의 말문이 열렸고 동행을 허락했다. 지하도에서 먹고 잔 2박3일간의 한파체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23일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이사를 떠나다

5년 전 상경했다는 정현대(51ㆍ이하 가명)씨는 이사 중이었다. 매일 잘 곳을 찾는 일을 그리 불렀다. 이삿짐은 배낭과 은색 스티로폼단열재, 등산용 깔개가 전부였다. 그는 한때 PC방, 만화방을 전전했지만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준다며 쫓겨나기 일쑤였다. 겨울이라 막노동 일감이 줄어 한 달에 두 번 정도 일을 한다고 했다. 일당이 6만원이니 12만원으로 한 달을 나는 셈이다. 새 집을 구하느라 그는 2시간 가까이 거리를 헤맸다.

자정 무렵 시청역에 도착한 정씨는 10번 출구와 반대편 출구 사이 복도에 짐을 부렸다. 능숙하게 깔개를 먼저 놓고 위에 스티로폼단열재를 올린 뒤 방이라 부르는 침낭을 펼쳤다. 영하 7도를 오갔지만 바깥바람이 들지 않아 그리 춥지는 않았다.

그는 동장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야전물품을 챙기듯 배낭을 점검했다. 비닐잠바 1개, 내복과 체육복이 각 두 벌씩, 마지막으로 나온 건 <내일, 오늘> 이란 수필집이었다. 궁금해하자 뜬금없이 꿈 자락을 펼쳤다. "돈 벌어 귀향(전북 전주시)하면 서울 기억 다 잊고 돼지농장 할거야." 그가 잠들자 서울역으로 갔다.

24일 새벽까지: 화장실도 다 찼다

서울역 노숙인들은 역사 관리방침에 따라 자정부터 밖에 나와있었다. 어느덧 영하 10도까지 떨어져있었다. 오전 2시30분, 문이 다시 열리자 사람들은 따뜻한 3층을 차지하려고 뛰었다. 아랫목은 매표소 뒤쪽, 형광등 빛도 닿지 않아 수면에도 적합하다. 20여명이 벌떼처럼 점거하는 통에 2층으로 밀려갈 수밖에 없었다. 미처 바닥에 깔 종이박스도 구하지 못해 열차 타는 곳 앞 벤치에 누웠다.

나무벤치를 얼음장으로 만들어버린 혹한 탓에 이내 몸이 정신 없이 떨렸다. 초로의 노숙인이 혀를 끌끌 찼다. "2층에선 이불 없이 못 자, 입 돌아간다고." 5분을 주기로 앉았다 누웠다 하다가 화장실을 찾았다. 웬걸 화장실도 방마다 들어찼는지 모두 잠겨 있었고 바닥에도 몇몇이 웅크려 있었다.

24일 오후 8시까지: 서울역1호선 5번 출구를 사수하라

오전 10시 역 부근의 무료급식소로 향했다. 오영익(35)씨는 치아 변색이 심했다. 잇몸 부위가 짙은 갈색으로 바뀐데다 이 사이가 많이 벌어져 통증을 호소했다. 그나마 오씨는 나은 편이다. 50대 중반의 한 남성은 윗니 두 개, 아랫니 세 개로 어렵게 음식을 씹고 있었다. 이 위치가 달라 입을 다물 때마다 턱이 쏙 들어갔다. 노숙인 대부분은 치아관리를 전혀 받지 못했다. 진료소의 무성의한 태도와 비싼 비용 때문에 갈 엄두를 못 낸다는 게 그들의 불만이다.

오후는 무료했다. 역사에 앉아 TV를 보거나 거리를 쏘다니는 게 다였다. 부지런한 몇몇은 몰래 지하철을 타고 사당이나 경기 안산 등으로 넘어가 원정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었다.

오후 7시가 되자 느릿한 풍경이 갑자기 빨라졌다. 지하철역 곳곳에서 자리쟁탈이 벌어졌다. 그들이 말하는 명당이란 바람과 소음을 막는 곳이다. 연세빌딩을 등지고 입을 벌린 서울역1호선 5번 출구, 바람을 등진 입구에 역사와 계단이 90도로 틀어진 시청역2호선 10, 11번 출구가 대표적이다. 남대문 지하도는 차선이다. 2년 째 이곳에 사는 40대 초반 남성은 "저녁을 후딱 해치우고 미리 와 박스를 깔아놓아야 내 집"이라고 했다.

24일 밤 10시부터 다음날까지: 최후의 만찬

서울역 뒤편 20평 남짓의 노숙인쉼터에 잠입했다. 스물셋 청년부터 85세 노인까지 다양했다. 기독교시설이라 예배당의 긴 의자에 이불을 깔고 옆으로 누워 잠을 잤다. 총무 김영인(57)씨는 당구와 여자에 빠져 망친 제 삶의 넋두리를 한참이나 늘어놓았다. 끝은 "엄니한테 죄스러울 따름이지 뭐" 였다.

오후 10시 취침, 오전 5시 기상, 30분간 예배, 음주 금지 등의 규칙도 있었다. 굳이 기상시간을 정하지 않더라도 영하 10도의 추위에 코끝이 시려 자연히 잠을 깼다. 김우영(55)씨가 보통 공기보다 서너 배나 많은 밥을 미역국에 후루룩 말아먹었다. "지금 내 앞의 식사가 마지막이 될지 몰라서야. 일단 먹어두는 거지. 배가 고파서라기보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서울역으로 나섰다. 종이박스를 구하느라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김우영씨가 빈손인 기자를 보더니 인생의 조언을 해줬다.

"남의 눈 신경 쓰지마, 그이들이 자네 인생 살아주나, 정부가 도와주나. 부지런하게 다녀야지. 내 한 몸 따습고 편안히 누이려면 열심히 챙겨야 해. 저~기 박스 하나 있네, 얼른 주워."

김현수 기자 ddackue@hk.co.kr

■ 서울역 인근 급식소 '따스한 채움터'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소 '따스한채움터'는 하루 네 번 식사와 간식을 제공한다. 서울시가 건물을 짓고 노숙인복지시설협회가 위탁 받아 운영하는데, 교회나 봉사단체 23곳이 순번을 정해 식사를 준비한다. 끼니 때마다 약 350명이 찾는다.

단체들은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지원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 기독교단체 원장은 "교회 재정이 어려워져 반찬 값을 줄이려고 국밥을 내놓기도 한다"며 "구청에 몇 차례 재정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했다. 현재 구에서는 10인 이상 숙식을 동시에 제공하는 단체에만 지원한다.

주거지원도 늘려야 하는 부분. 서울시가 노숙인의 잠자리를 위해 주요 역 중심으로 상담보호센터와 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 방에 많게는 십수명씩 생활하고 매일 입소와 퇴소를 반복해야 하는 불편이 크다.

따라서 임대주택 등 혜택을 확대해 삶의 계획을 세울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 구세군자활주거복지센터, 다시서기상담센터 등 일부 시설은 이미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다.

2006년부터 SH공사 등과 매입임대주택 지원시범사업을 진행해온 구세군자활주거복지센터는 2008년 7월 계약 종료 후 더는 노숙인에게 신규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센터의 김욱 부장은 "안정적인 울타리에서 자활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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