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트위터 이용자 250만명, 페이스북 380만명.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ㆍSNS)가 무서운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니홈피와 블로그, 인터넷카페 등 기존의 SNS형 서비스까지 합하면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이 SNS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야말로 디지털 공간에서 무한대의 인맥 구축이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는 법. SNS를 통한 디지털 인맥 확장 과정에서 사생활 정보 유출 등 예기치 않았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무리한 디지털 인맥 확장이나 집착 때문에 '디지털 피로증'을 호소하거나 극단적으로는 범죄 피해를 입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SNS는 잘 활용하면 현실 인맥의 훌륭한 보완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인맥과 관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현실의 자아와 실생활을 왜곡할 수도 있다. SNS는 양날의 칼인 셈이다.
● 위기의 프라이버시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기존의 인터넷 포털 카페와 달리 가입 시 주민등록번호 입력을 통한 실명 인증을 직접 요구하지 않는다. 때문에 프라이버시 노출 빈도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하지만 SNS 서비스 이용자 대다수가 무의식적으로 위치ㆍ가족 정보를 공개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게 문제다. 이는 범죄에 악용될 여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위터 팔로워(Follower)의 경우 페이스북 친구보다 인맥 친밀도가 낮고, 그 수가 많게는 수만 명에 달할 수 있어 개인정보 유출이 더 손쉬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명, 주소, 가족관계 등 이른바 '신상(신상정보) 털기'가 구글링(인터넷 검색)보다 간단히 이뤄질 수 있다. IT 전문 저술가인 <트위터 무작정 따라하기> 의 저자 정광현씨는 "사람들은 완전하게 열린 공간인 트위터라는 곳에서 의도적으로 사생활을 노출하며 스스로 즐거워하고 있다"며 "지금의 SNS 공간은 흥신소 업체나 개인정보 사냥꾼들에게 더없이 좋은 먹잇감을 제공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마치 현실 세계에서 친구들에게 비싼 액세서리를 꺼내 보이며 자랑하듯 SNS 이용자들 역시 별 거리낌 없이 개인정보가 드러나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트위터>
지난해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 보도에 따르면, 범죄 전과자 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8%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 대상자에 관한 정보를 검색한다"고 답했으며, 이 중 12%는 놀랍게도 정보 검색에 트위터 등 SNS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한 이용자가 트위터에 '공항에 가고 있다''1주일 동안 휴가를 떠난다'와 같은 트윗을 위치 정보와 함께 올렸을 경우, 그와 디지털 인맥으로 연결된 범죄자(혹은 잠재적 범죄자)에게 그야말로 완벽한 절도 기회를 갖다 바치는 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현재까지 SNS를 이용한 범죄 사례가 두드러지게 눈에 띄진 않고 있다. 그러나 트위터 팔로워들에게 '헌혈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띄워 헌혈증을 수집한 후 암시장에서 이를 환자들에게 비싼 값을 받고 되팔거나, 소셜커머스(SNS를 통한 전자상거래)를 통해 구매자를 모집해 돈을 챙긴 뒤 사라지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 인맥 집착증과 후유증
현실에서 만남과 소통을 통해 실질적인 관리를 할 수 있는 인맥은 50명 내외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SNS 인맥의 범위는 무한대나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은 친구 수를 5,000명으로 제한하지만 페이지를 개설하면 팔로워 수에 구애받지 않는 트위터처럼 인맥 구축 범위의 한계가 사라진다. 그래서 디지털 인맥의 세상은 현실과 가상 공간으로 분리된 자아가 각각 다른 관계를 맺는 영화 <매트릭스> 의 공간과 비슷하다. 현실에선 대화의 기회가 없는 연예인을 SNS 공간에선 친구로 사귀며 출연작 평가를 하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리 직접 대답을 듣기도 한다. 매트릭스>
이러한 매력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디지털 인맥 늘리기에 집착하게 된다. 트위터에서는 '팔로워 수 = 영향력'이라는 공식이 이미 오래 전에 자리 잡았다. 갖고 있는 구슬이나 딱지의 숫자가 또래 집단 내 영향력을 좌우하는 어린이 세계처럼, 사람들은 트위터 팔로워 수에 집착한 나머지 팔로워 수를 늘리려고 리트윗(트윗 추천)을 해주는 업체를 직접 찾아 나서기도 한다. <미르몽의 원더풀 트위터 라이프> 의 저자인 이영균 온미디어 팀장은 "SNS 공간에서 활동하는 자아는 실제 생활의 자아와 일치하지 않는다"며 "온라인의 자아가 오프라인의 자아와 닮아가면서 SNS의 디지털 인맥 형성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허망한 인맥 쌓기는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한다"고 말했다. 미르몽의>
디지털 인맥 집착은 현실 도피, 디지털 공간에서의 소외감, 필요 이상의 사생활 노출 등 다양한 병리현상을 초래한다. 페이스북을 통해 현실 세계의 인맥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무명 모델 사진을 복사해 디지털 세상의 자아로 꾸미는 남성이 있는가 하면, 한국인과 결혼하려고 페이스북에서 한국인 행세를 하는 동남아 여성도 있다. 디지털 인맥 활동에만 집착한 나머지 현실 공간에서 만난 트위터 팔로워와 대화 한마디 나누지 못하다 휴대폰 문자로 대화를 나눴다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정광현씨는 "트위터로 맺은 인맥은 실제 인맥과 아주 다르다. 무작정 팔로워 관계를 늘리는 것은 자기 과시일 뿐이다"며 "실제 친분 있는 사람끼리만 친구 관계를 맺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페이스북에서도 최근 이 같은 인맥 집착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 디지털 인맥 피로감
이젠 SNS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시대 흐름에 뒤떨어지기 쉬운 시대가 됐다. 각종 메신저와 싸이월드,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SNS로 연결된 채널을 통해 수많은 정보와 의견이 오가고 있다. SNS 채널을 도외시 했다가는 자칫 원시인 취급을 받을 판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SNS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도 덩달아 늘고 있다. 더 확대된 대화 채널, 디지털 인맥 관리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상황에 익숙치 않은 데서 오는 어려움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이다.
회사원 김홍식(38)씨는 수시로 울려대는 스마트폰의 알림음 때문에 요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SNS를 적극 활용하라는 회사 방침에 따라 트위터, 카카오톡 등을 업무에 활용하고 있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올라오는 트위터 쪽지(DM),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업무는 물론 휴가 시간도 방해를 받고 있다고 김씨는 하소연한다.
서울시교육청 직원 이모(48)씨도 SNS 때문에 오는 피로감을 호소한다. 교육감이 내부 논의 전에 정책 방향을 트위터에 쏟아내고 있어 틈틈이 이를 확인하는 것이 이씨의 중요한 업무가 됐다. 이씨는 "실무자간 의사소통 방식은 여전히 '면 대 면'인 반면 일반인과의 소통은 SNS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담당자가 정보에서 소외되는 역전 현상도 일어난다"고 말했다.
박지선(28)씨는 술자리에서 벌어진 자신의 실수담을 트위터에 올렸다 낭패를 봤다. 자신과 연결된 소수만 볼 것이라 여겼던 글이 트위터 RT(리트윗)을 통해 삽시간에 퍼진 것. 당황한 박씨는 글을 황급히 지웠지만 한 번 퍼진 박씨 글은 고스란히 타인의 트위터 계정에 남게 됐다.
배운철 소셜미디어전략연구소 대표는 "SNS가 대세지만 확대된 채널 때문에 후발 사용자들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며 "사용 초기에는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 보다는 정보의 창구로서 '지켜보기'를 하며 SNS의 특징을 충분히 파악해야 SNS 피로감과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박철현기자 karam@hk.co.kr
■ SNS 설문조사/ SNS 사용자 절반 "생활 침해 우려 있다"
SNS를 통한 디지털 인맥 구축으로 만족감이나 편의성이 증대하는 것만큼 불안감과 피로감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 현실은 한국일보가 17일부터 19일까지 온라인 쇼핑 사이트 옥션(www.auction.co.kr)을 통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20대 이상 성인 남녀 3,679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54.7%가 SNS 이용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6.9%는 가상 공간에서의 활발한 활동과 무료한 현실 일상 간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11.9%는 유명인들 간 대화에서 오는 소외감 등 '군중 속의 고독'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SNS를 통해 알게 된 디지털 세상의 사람들과 현실 세계에서 직접 만남을 갖거나 만날 용의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인 58.9%가 만나 봤거나 만나 볼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 41.09%는 만날 의사가 없거나 아예 SNS상의 인맥이 없다고 밝혔다.
SNS 이용자는 응답자 10명 중 7명꼴로 집계됐다. 이용하는 SNS는 트위터 미투데이 등 마이크로블로그 서비스가 18.6%, 페이스북 7.5%였으며,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 개인 홈페이지는 47.3%로 나타났다. SNS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26.7%였다.
SNS 이용 시 거북한 점으로는 유명인들의 일방향적 소통 증가에 따른 실망감, 소외 등을 꼽은 응답자들이 많았다. 회사원 안주연(38)씨는 "유명 인사가 남긴 글(멘션)을 보면서 친구처럼 가까워진 것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정작 내가 남긴 질문에 그들이 답을 남기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SNS에서 유명인과의 대화에 연결된 것만으로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믿는다면 큰 착각"이라며 "트위터의 유명인은 자신의 퍼포먼스에 스스로 도취하는 무대의 연예인과 같다"고 분석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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