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세이버 최우수대원' 배지 받은 김만선 소방장삼풍백화점 사고 때도 최명석씨 처음 발견"장비는 좋아졌어도 도움주는 사람은 줄어"
생사의 갈림길을 지켜보는 일은 두렵고 드문 일이다. 서울 성북소방서 구급대원 김만선(47) 소방장의 직업은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순간에 개입하는 것이다.
23일 밤 성북구 장위119 안전센터에서 만난 김소방장은 "죽고 사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다" 고 말했다. "젊고 건강한 사람도 갑자기 죽을 수 있고, 10년 동안 아파도 계속 살 수 있습니다. 오늘 괜찮아도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는 죽지 않는다는 생각은 말아야죠."
그는 거의 뒤집힌 '손바닥'을 되돌려 놓기도 한다. 김소방장은 지난 12일 구급현장에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해 '하트 세이버(Heart Saver) 최우수대원' 배지를 받았다. '하트 세이버'는 심장 정지 등으로 죽음 직전에 놓인 환자를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응급처치로 구한 대원에게 인증서를 주는 제도다. 병원에 도착한 환자가 72시간 이상 생존해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2005년 제도를 도입한 이후로 그는 가장 많은 20명의 생명을 살렸다.
죽음의 문턱까지 간 사람을 살려내는 게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은 아니다.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가는 동안 전화를 걸어 가족이나 발견자가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하도록 지시합니다. 현장에 가면 한 명은 환자에게 바로 뛰어가고, 나머지 사람이 장비를 챙겨 뒤따라 옵니다."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면 더 바빠진다. "희열 같은 건 느낄 틈이 없죠. 심박그래프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더 열심히 해서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구급차가 롤링(급회전)을 할 때면 머리를 차에 부딪쳐가면서도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못합니다."
그렇게 수많은 생명을 살렸지만 그는 환자가 살아난 순간보다 눈앞에서 목숨을 잃은 아쉬운 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06년 여름인가 태어난 지 1년도 안된 영아가 숨을 못 쉰다는 신고가 들어왔어요. 젊은 부모가 정신이 없으니까 소리 지르고 해서 제대로 지시도 못했죠." 마음이 급한 부모는 아기를 둘러업고 골목길로 뛰어 나왔는데 김소방장의 구급차와 길이 엇갈렸다. "신고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죠."
도움을 청한 사람들도 다행보다는 불행에 얽매인다. 지금까지 그가 살려낸 사람이나 그들의 가족 중 나중에 고맙다고 연락을 해온 사람은 없다. 항의는 많았다. "찾아 와서 따지고 전화해서 욕하고 인터넷에 올리고 그런 일들이 있죠.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 그럴 수 있죠. 저희는 그냥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합니다."
심장이 멈춘 사람을 살려주고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언젠가 추석 직후에 심정지 상태에 빠진 할아버지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출동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해서 박동이 돌아온 상태로 병원에 인계했는데 나중에 전화가 왔습니다. 딸인가 하는 분이 사람이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하더라구요." 그 할아버지는 뇌사였다.
특전사 중사로 제대한 그는 94년부터 소방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구조대에서 활동을 하다 2003년부터 구급차를 타고 있다. 구조대에 있던 1995년 6월 그는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에서 최명석(당시 20세)씨를 사고 열 하루 만에 처음 발견하기도 했다. "그날 아침에 모든 중장비가 멈춰 조용하던 게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래서 사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죠.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돌을 절단하고 가까이 가보니 사람이 살아있더라구요. 계속 움직이던 중장비가 왜 갑자기 일제히 멈췄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구조현장에서 바라본 우리사회는 어떻게 변했을까. "선진국보다는 부족하지만 우리 시민들도 이제 심폐소생술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구급차나 장비도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는 것 같아요. 혼자 사는 노인들이 제때 연락을 못해 나중에 발견되는 애석한 일이 많아졌죠. 그리고 사이렌을 울리고 가도 전보다 길을 잘 안 열어줍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사회는 구조할 수 있는 사람과 장비는 늘었는데 정작 급할 때 곁에서 신고하고 도와주는 사람은 줄어가고 있다. 김소방장은 밤새 눈이 내린 이날도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11번의 출동을 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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