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온도 점검반 떴어요"… 강남 일부 빌딩 긴급처방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역 부근의 C빌딩. 회사원 A씨는 어디 문이 열렸나 싶을 정도의 한기를 느꼈다. 평소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냉수를 마셔야 할 정도로 뜨거웠던 사무실이었다. 목도리를 둘러도 너무 추웠던 터라 관리실에 항의를 했더니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에어컨을 켰으니 잠시만 참아주세요. 점검반이 떴어요, 떠나면 다시 온도 올려드릴게요."
A씨는 "겨울철 에너지소비를 줄이자고 점검을 한다는데 온도를 낮추기 위해 에어컨을 켜는 건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씁쓸해했다. 더구나 해당건물은 올해 서울시가 에너지 사용량 1%를 줄이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건물 에너지 합리화 사업'에 동참한 빌딩이었다. 고효율변압기 등의 설치비용을 시가 일부 보조해준 것이다. 빌딩 관계자는 "실내환기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24일부터 전국의 에너지 다소비 건물 441곳에 대해 실내온도(20도 이하) 점검에 나서자 단속을 피하기 위한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창문 개방은 기본, 환풍기 가동에 심지어 에어컨을 켜는 곳까지 확인됐다.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한 온도제한이 도리어 에너지 사용을 부추기는 꼴이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은 실내온도 점검에 대응하기 위해 환풍기 가동을 검토하고 있다. 백화점 건물 특성상 창문이 없고 고열의 램프가 많아 실내온도를 20도 이하로 설정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이 될 수 있기 때문. 백화점 관계자는 "창문을 열 수도 없고, 손님이 많아 난방기를 끌 수도 없는 만큼 필요하다면 환풍기를 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전기로 끌어올린 실내온도를 또 전기를 소비해 낮춘다는 발상이다.
단속반을 비웃는 행태가 가능한 건 단속 정보가 샜기 때문. 에너지관리공단과 공동으로 점검엔 나선 서울시 관계자는 "불시, 암행단속이 점검의 제1원칙이지만 대상 건물이 집중된 서울 강남은 단속 정보가 실시간으로 이웃 건물에 전파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점검 대상 441곳 중 400개가 서울, 특히 강남에 밀집돼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적정 실내온도가 대체로 잘 지켜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언론 등을 통한 홍보 때문인지 첫날 점검이 이뤄진 전국 107곳 중 8곳만 시정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회사원 남모(34)씨는 "이쯤 되면 목적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자는 것인지 애꿎은 에너지를 더 쓰더라도 실내온도만 낮추면 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했다.
정부는 24일부터 2월18일까지 4주간 실내온도 점검을 해 최초 위반 시엔 시정명령, 이후에도 적발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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