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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완서씨 영결식, 세상의 상처 지우고 영원한 안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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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완서씨 영결식, 세상의 상처 지우고 영원한 안식에…

입력
2011.01.2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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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봄날 햇살아래 점심 드시기로 한 약속 잊으셨습니까/ 가슴에 묻으신 '나의 가장나종 지니인' 아드님 뵙고 싶어 서둘러 가셨으리라/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뵙고 싶어 서둘러 가셨으리라/ 선생님 문학의 뿌리인 어머니 만나 뵙고 싶어 더욱 서둘러 가셨으리라 미루어 생각해도 생각해도 눈물이 고입니다.(정호승 시인의 조시 '박완서 선생님을 보내며')

소설가 고 박완서씨가 지상과 마지막 이별을 고하고 먼 길을 떠났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고인의 장례의식은 25일 오전 10시 생전에 다녔던 구리 천주교 토평동 성당에서 장례미사로 치러졌다. 섬김을 받기보다 스스로를 먼저 낮추고자 했던 고인의 성품처럼 장례식은 조촐한 가족장으로 진행됐다. 앞서 오전 8시40분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발인식도 추모사 등의 별도 의식 없이 천주교식 출관예배로 마쳤다.

미사를 집전한 김성길 신부는 "선생님은 한 송이 수선화처럼 다소곳하고 겸손한 향기를 풍기신 분이었다. 영정사진의 미소처럼 우아하기보다는 시골장터서 우연히 마주친 적 있는 아낙네의 소박한 웃음으로 우리 곁을 지켜주셨다"며 고인을 회상했다.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참으로 많이 사랑했고 많이 사랑 받아 행복했노라고 겸손히 고백해온 우리의 어머니를 받아주십시오. 우리의 어머니를 이 세상에 계실 때보다 더 행복하게 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고인이 생전에 마지막 배웅을 받고 싶다고 했던 이해인 수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힘겹게 기도를 드리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성당 2층까지 자리를 가득 메운 300여명 추모객들은 부디 편히 쉬시길 두 손 모아 바랐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조사에서 "선생님이 계셔서 그나마 따뜻했던 겨울이 오늘 이렇게 모질고 춥다"며 "사나운 시대의 험한 꼴을 많이 보셨지만 그 아픔과 쓰림이 국민문학이 됐으니 결코 헛되지 않았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장례미사에는 큰 딸인 작가 호원숙씨 등 유족과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이근배 시인 등을 비롯, 박범신ㆍ정과리ㆍ강영숙ㆍ조선희ㆍ정종현ㆍ민병일ㆍ이경자ㆍ심윤경ㆍ임철우ㆍ은희경 등 문인들과 양숙진 현대문학 대표,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 김영현 실천문학사 대표 등 여러 문학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장례미사를 마친 고인의 유해는 앞서 세상을 떠난 남편과 아들, 김수환 추기경이 잠들어 있는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로 운구됐다. 아들의 묘를 앞에 두고 남편과 나란히 묻히게 된 고인의 관 위로 가족들과 지인들은 흰 국화 와 눈물을 흩뿌리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였지만 100여명의 문학계 인사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민병일 시인은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선생님 댁에서 평소 좋아하시던 고구마랑 초콜릿을 같이 나눠먹었다. 날 따뜻해지면 '박완서가 사랑했던 바다라며 아끼셨던 전남 순천의 와온 바닷가를 같이 거닐기로 약속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소설가 공지영씨는 "엄마를 잃었다"고 했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청춘"이라던 고인은 '부드럽고 따숩은' 흙 속에서 세상의 상처를 모두 지우고 그렇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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