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잇단 교육논쟁에서 당혹스러운 점은 우리 모두가 '교육계 보혁게임'의 흥행도구로 전락해버린 듯한 상황이다. 사회적 논쟁은 곧 여론의 표출과정이고, 정상적이라면 정책은 그 여론을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보수든 진보든 정작 논쟁에 불을 지른 교육정책의 주체들은 팔짱 낀 채 불구경만 할 뿐, 여론을 수용하겠다는 자세는 없다. 결국 공론(公論)이 돼야 할 사회적 논쟁은 공론(空論)으로 변질되고, 국민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봤자 선거연설에 동원된 우중(愚衆)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무상급식ㆍ체벌…사사건건 대립
무상급식 논쟁만 해도 그렇다. 진보 성향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들고 나와 오세훈 서울시장과 시비를 벌이면서 전 언론과 인터넷은 공론으로 들끓었다. 시민적 공감과 분노, 납세자와 수혜자로서의 개인적 입장들이 큰 강물처럼 굽이쳤다. 그 결과 대강 '무상급식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라는 정도의 여론이 형성됐다. 하지만 양측은 이를 반영한 절충 없이 여전히 샅바를 놓지 못한 채 용만 쓰고 있다.
체벌 전면금지 논쟁도 마찬가지다. 여론은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전면금지가 잘못됐다는 건데도 곽 교육감은 애써 외면한 채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다. 여론에 힘입어 보다 나은 방안으로 곽 교육감을 포용할 수 있었던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시교육청과 절충을 벌이기는커녕 덜컥 '간접체벌 허용'카드를 꺼냈으니, 좋은 여론을 싸움에 써버린 셈이 됐다.
국민을 흥행도구로 전락시키고 여론을 헛된 공론으로 날려버리는 교육계의 보혁게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교원평가제 도입부터 교과 교육과정 개정이나 대입시 문제에 이르기까지, 교육계 현안 하나하나가 보혁쟁점이 아닌 게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면 언제까지 교육계의 시끄러운 보혁게임을 방치해 둘 것인가. 우리의 자녀, 이 나라를 이어 받을 차세대의 일상과 성장을 좌우하는 백년대계가 정파적 이해 때문에 이리저리 표류하는 상황이 더 이상 이어져선 곤란하다. 최소한 막대한 사회적 에너지를 낭비하면서도 혼선만 부추기는 교육논쟁만이라도 이쯤에서 자제돼야 한다.
사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교육논쟁이 필요 이상으로 불거진 건 보혁 간의 입장차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캠페인에 대한 양측의 강박관념이나, 적절한 정책 추진과정에 관한 정책 수장들의 몰이해가 더 크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무상급식이나 체벌금지를 둘러싼 대립과정을 대강만 돌아봐도 그런 혐의는 짙게 나타난다.
학교 무상급식 전면실시는 진보 성향인 곽 교육감의 선거공약이었다. 그로서는 마땅히 실천해야 할 약속인 셈이었다. 문제는 무상급식 예산을 일부 서울시에서 지원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곽 교육감이 좋은 행정가였다면 마땅히 보수 성향인 오 시장의 지원을 타진하고 최대한 협력적 분위기를 조성한 후 시행을 추진했어야 했다. 하지만 곽 교육감은 그런 '조용한 조율'을 하지 않고 덜컥 실력행사에 돌입했다. 오 시장 역시 예산 신청 과정에서 시의회와 타협을 모색하는 대신 이른바 '무상급식 예산'이 편성되자 발끈해서 본격적인 장외 싸움판을 벌였다.
곽 교육감의 미숙한 행정력은 체벌 전면금지 조치 발표 때도 노출됐다. 지난해 7월 예민하기 짝이 없는 이 조치를 발표하면서도 사전에 여론을 청취하거나 교육과학기술부 등 유관 정책 당사자와 협의조차 거치지 않아 논란을 자초했다. 물론 나중에 교과부가 간접처벌 허용 방침을 발표할 때 이 장관 역시 시교육청과 아무런 협의를 하지 않았다.
캠페인과 정책 혼동 말아야
두 가지 사례에서 두드러지는 사실은 중앙과 지방, 보혁을 막론하고 교육정책이 너무 설익은 상태에서 가볍게 공론에 부쳐진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정책화하려면 타당성 검토와 전문가 조사, 비공식 사전 여론조사, 유관기관 협의 등의 과정을 기본적으로 거쳐야 한다. 하지만 최근 교과부나 서울시교육청을 보면 이런 과정을 충실히 밟는 흔적 없이 정치적 선전처럼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자라나는 학생들을 봐서라도 교육계 수장들은 정책 발표가 정치 캠페인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시급히 뜻을 모아야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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