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나리오를 쓰는데, 1980 년대 운동 가요에 대한 자료가 좀 필요했다. 인터넷 사이트도 뒤져보고, 서점 가서 책도 사보고 했지만 원하는 자료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요즘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는 트위터에 물어봤다. "혹시 1980 년대 운동권 노래 중에서 '어둠'이나 '밤'이 가사로 나오는 노래 아시면 좀 알려 주세요."
한 30초 후부터 수많은 대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트위터라는 소통의 장도 위력적이었거니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시절의 운동권 노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답변을 준 대부분 내 또래의 사람들에게 그 노래들은 단지 노래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했기에 빛났던 청춘의 기억이었다.
정의감 대신 실용 지배
"어둠 속에 빛나는 수많은 별처럼, 억눌리고 밟혀도 흔들리지 말자, 땅의 사람들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가 술만 마시면 불렀던 노래입니다. 같이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어두운 죽음의 시대, 내 친구는 굵은 눈물 굵은 피 흘리며... 친구 투, 철야농성 끝나고 새벽에 부르면 제 맛이었는데." "기나긴 밤이었거늘 압제의 밤이었거늘, 저 삼월 하늘에 출렁이던 피에 물든 깃발이어든, 이 산하에, 노찾사 공연에서 이 노래를 듣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살을 에는 밤, 고통 받는 밤 차디찬 새벽서리 맞으며 우린 맞섰다. 사랑 영원한 사랑, 동지 투, 가두투쟁 나갈 때 이 노래로 두려움을 없앴지요."
답변들을 보면서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도대체 어떤 시절의 청춘이기에 이렇듯 전투적인 가사와 슬픈 곡조로 자신들의 청춘을 기억하는가? 이런 노래를 부르던 대학생들 모두가 진보 정치인이나 노동 운동가가 된 것은 아니었다. 대기업 간부도 있고, 학교 교사도 있고, 식당을 운영하기도 하면서 대부분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 다시 자녀들이 대학에 다닐 나이가 됐을 것이다. 불과 30년도 지나지 않는 사이 대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는 현저하게 달라져 있었다.
TV에 세시봉 멤버들인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 등의 1 세대 포크 가수들이 출현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들은 노래로 자기 시대가 요구한 몫을 다 했다. 청춘의 생각을 진솔하게 노래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한국에서 그들의 발명이다. 그들의 노래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사회적인 의미를 띠면서 운동권 가요로 진화해 갔고, 6월 항쟁이나 광주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대중성을 가진 운동권 노래들이 되었던 것이다.
어느 시대나 청춘은 정의를 지향한다. 정의는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순수라고도 할 수 있다. 대학 시절은 성인의 몸과 생각은 갖췄지만 아직은 기성의 질서에 편입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정의와 순수에 가장 헌신할 수 있는 인생의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1980 년에 청춘의 이런 정의감이 가장 잘 발현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의 역설이었다.
그러나 그 자녀들이 대학생이 된 지금 청춘은 온통 실용의 가치들이 지배한다. 취업을 위한 스펙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운동권 동아리는 없어도 토익 스펙 동아리는 수백 개다. 노래방에서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전자음에 의해 재생되고 있다.
인생과 사회의 방부제
물론 이 모든 게 현재 대학생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80년대 정의로웠던 부모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되어서 그 자녀들이 취업을 쉽게 할 수 있는 사회는 만들지 못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어쩌면 청춘에는 마음껏 정의로웠고, 취업은 쉽게 해서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부모 세대들의 정서적 실질적 피해자들이다.
그래도 아쉽다. 그 시절에 정의와 순수를 학습하지 못하면 그들이 사회에 편입됐을 때 세상은 더 빨리 부패할 것이다. 실용이 지배할수록 그 실용에 저항하는 청춘들의 노력은 절실하다. 청춘은 작게는 한 개인의 인생에, 크게는 한 사회 전체에 방부제 같은 것이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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