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경찰청 전경대원들이 근무지를 집단 이탈한 뒤 부대 내의 비인간적 악습을 폭로하면서 파장이 크게 번지고 있다. 매년 끊이지 않고 수십 년 문제가 돼온 내용이다. 병역의무를 이행하려는 젊은이들이 전의경 생활 2년 동안 참혹한 정신적ㆍ신체적 학대를 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전의경 부대의 가혹행태는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변명의 여지 없이 전적으로 국가와 경찰조직의 책임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이 문제에 대해 새삼스러운 듯 단호한 처벌의지를 밝힌 것은 코미디다. 지난해 여름 아들이 가혹행위를 당해 혈액암이 발병해 숨졌다는 한 어머니의 피 끓는 호소도 있었지만, 전의경들의 악습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당장 인터넷에만 들어가도 끝도 없는 전역자들의 고발을 확인할 수 있다. 강원경찰청 전경대원들의 호소와 정확히 일치하는, 인간성 말살적 내용들이다. 경찰 지휘부가 뻔히 알면서도 묵인해왔다는 뜻이다. 25일 또다시 발생한 인천경찰청의 의경 자살사건의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혹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시위 진압의 공포와 회의를 극복하고, 늘 일반사회에 노출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 이완을 막기 위해 엄정한 군기 확립을 강조한 것이 왜곡된 방향으로 흘렀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간부들의 책임의식이 희박해 지휘ㆍ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직업경찰관에게 기동대 근무는 단기간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재임 기간아 탈 없이 지나가기만 바랄 뿐이니 악습의 대물림을 알면서도 방치해온 것이다.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부대 해체 경고는 헤쳐 모여 이상의 별 의미도 없다. 이 상태라면 사방으로 흩어진 대원들은 또 다른 부대에서 '고자질'했다는 대가로 훨씬 괴로운 대접을 받을 것이다. 경찰조직의 정신상태가 바뀌고 근무시스템을 제도적으로 보완하지 않는 한 가혹행위 근절은 구두선이다. 조 청장의 말처럼 "가혹행위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식의 인식을 갖고 있는 경찰 지휘부에 뭘 기대할지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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