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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현 첫 소설집 '오후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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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현 첫 소설집 '오후의 문장'

입력
2011.01.2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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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하지 않다는 게 콤플렉스예요." 럭비공이 지닌 예측불허의 폭발력을 사랑하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의 글에 엄격했다. 작가의 이 긴장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을 직조해낸 그의 첫 소설집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2006년 한국일보, 강원일보,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시에 당선돼 3관왕 타이틀로 화제를 모은 김애현(46ㆍ사진)씨. 지난해 첫 장편 <과테말라의 염소들> 에 이어 최근 단편 8편을 담은 첫 소설집 <오후의 문장> (은행나무 발행)을 펴내며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10년의 습작기간을 거친 늦깎이 등단이었던 만큼, 그는 신인 답지 않은 진중한 주제의식과 안정된 문장을 겸한 신진 작가다. 그 진중함이 때로 지나쳐, 이를테면 백화점 피팅 모델의 그늘을 다룬 '카리스마스탭'은 감정이입을 극도로 배제한 객관적 묘사 탓에 읽기 쉽지 않다. 단문의 문장 연결에도 불구하고 글은 꽤나 무겁다. "그 글을 쓸 때는 가벼워 보이는 것을 싫어했어요. 죽을 힘을 다해 다 깎아내면서 글을 썼는데, 바싹 긴장돼 있었던 게 나타났던 것 같아요."'반짝 패기'를 무기로 삼는 젊은 신인의 반대편에서, 그는 되레 오랜 견습공의 자의식에 스스로 짓눌렸던 셈이었다.

지난해부터 그 부담감에서 벗어나 쓰기 시작한 단편이 '오후의 문장'와 '래퍼 K'. 묵직한 주제의식과 날렵한 문장이 제대로 호흡을 맞춰 인상적이다. 표제작 '오후의 문장'은 원시 부족의 모래그림, 실종된 아이가 새겨 놓은 문장, 그리고 주인공인 대필 작가의 불륜 등 세가지 이야기가 겹쳐 진행되는데, 근대 소설의 전통적 문제의식을 정교하게 풀어낸다. 제 멋대로 그린 듯 하지만 부족민끼리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는 모래그림이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타자와의 소통'을 상징한다면, 실종된 아이가 남긴 글에 붙잡혀 아이를 잊지 못하는 어머니와 아예 그 글을 낙서로 취급하는 아버지는 현대사회의 과잉과 결핍의 분열증적 양상을 대변한다. 그 틈에서 모래그림의 세계를 희구하며, 아이가 남긴 문장을 되풀이해 쓰는 대필 작가는 정확히 모던 시대 소설가의 문제적 지점이다.

청중들과 교감해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한 래퍼의 흔적을 추적하는 잡지사 기자의 이야기를 다룬 '래퍼 K' 도 마찬가지다. 불가능한 줄 알지만, 잃어버린 세계의 자취를 찾아가는 그 문제의식에 맞닿아있다. 웃음기 넘치는 문장과 속도감도 읽는 맛을 더한다. 강렬한 비트의 문제아라기보다 소설 가문의 충실한 제자였던 그는 "이제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진중한 문제의식으로 곰삭인 서사의 향취가 물씬 풍긴다. 서사 양식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새로운 감수성의 무늬를 음각하는 듬직한 작가의식"(문학평론가 고인환)이라는 평가처럼, 진중함과 발칙함의 균형을 기대해볼 만하다. 첫 소설집은 새로운 길에 들어선 늦깎이 신진 작가의 탄탄한 도약대가 될 것 같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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