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이 끝난 뒤 미국 싱크탱크의 한 중국 전문가는 "이제 시간이 흐르면 미중 정상회담에서 껄끄럽게 제기됐던 문제들이 고스란히 재부상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떠들썩하게 진행된 3박4일간의 '잔치'에도 불구,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다는 뜻이다. 대략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다. 정상회담 한번으로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 있던 현안들이 말끔하게 정리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한결 화기애애하고 원만해질 수 있다. 더욱이 현안 타결 보다는 내년에 퇴진하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모양 좋은 '미국 국빈방문'자체를 목적으로 보았던 시각에선 애초부터 기대가 적었을 것이다.
허나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변화를 학수고대하는 우리의 입장에선 그리 야박하게만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번에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우선 세심히 살펴볼 것은 중국이 과연 세계 주요2개국(G2)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받아들이고 그에 합당한 국제사회의 공정한 게임 룰을 지킬 자세를 보였느냐 하는 점이다. 아마도 대답은 "아직은 아니거나 충분치 않다"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 나름으로 그럴만한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2009년 11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중국은 'G2'라는 표현에 노골적 거부감을 드러냈었다. "뭐 별로 주는 것도 없이 책임만 덮어씌우려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는 중국 당국이나 관영매체들이 앞장서 'G2'지위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미국과 동등한 관계에서의 글로벌 협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는 "미중 관계는 초강대국과 초강대국 후보의 관계이며 1인자와 2인자의 관계", "중미 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 "미중은 세계 제1,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얘기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G2'용인이 후 주석의 방미를 포장하기 위한 것인지, 중국 내 고조되는 민족주의 정서에 부합하려는 국내 정치적 이유 때문인지 등은 확실치 않다. 그렇지만 한번 입은 옷은 물리기 어렵고 한번 올랐던 자리를 박차고 내려오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결국 국제사회의 상식과 보편적 가치, 합리적 게임 룰을 인정하는 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최소한의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선 중국 측이 이번에 북한이 주장하는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에 대해 우려를 표현한 것이나 후 주석이 인권과 관련해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중국의 G2로서의 위신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제는 중국도 명백한 것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겠다고 하거나, 분명히 비난 소지가 있는 것을 체제선택의 문제로 강변하기는 조금은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앞으로 더욱 더 부담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우리 처지에서는 갈 길이 멀다. 중국은 이미 인권 문제에 대해 후 주석의 발언을 중국 내에서 보도통제 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화적 핵활동 권리"운운하며 모르쇠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으로선 "항상 내일의 위기가 현재 닥치는 위기 보다는 낫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과 관련해 위기를 관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폭발점을 향해 위기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고태성 국제부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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