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성희롱 의혹을 받다 지난해 10월 자신의 연구실에서 목을 매 자살한 고(故) 정인철 고려대 수학교육과 교수의 "억울하다"는 취지의 유서가 26일 뒤늦게 공개됐다. 정 교수의 유족은 유서 내용을 토대로 이날 성희롱 사건을 조사한 고려대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 40대 젊은 교수를 죽음으로 내몬 책임소재를 두고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의 부인 명모씨는 서울 서초구 한 법무법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희롱 사건에 대해 남편은 죽음으로 결백을 주장했는데 고려대는 '개인정보와 비밀보장 의무'를 이유로 조사기록 열람조차 거부하고 있다"며 "법의 힘을 빌어 진실을 규명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정 교수는 같은 과 조교 A씨를 성희롱했다는 취지로 A씨의 지도교수 B씨에 의해 고려대 양성평등센터에 신고됐다. 2차례에 조사를 받은 정 교수는 지난해 10월18일 징계 취지의 심의결과 통지서를 받은 뒤 이튿날 목숨을 끊었다.
이날 공개된 정 교수의 유서에는 "어떻게 제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않고 A씨 말만 듣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성희롱… 인격모독하고 언어폭력을 했다고. 은혜를 배반이라는 날카로운 창으로 들이대냐"는 등 억울함을 드러낸 글들이 가득했다. 그는 또 "무슨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매일 전화하던 분들이 싹 돌아서서…. 한 팀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요" 라며 동료 교수들에 대해서도 서운함을 토로했다.
유족의 유서 공개와 소송 제기 결정은 정 교수의 지인,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카페에서 진실 규명 운동이 벌어진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양성평등센터가 기록 열람 요구를 거부했다는 유족의 주장에 대해 이미혜 센터장은 "정보 공개에 대한 법률과 교내 규정 등에 따라 열람이 불가하다는 통지를 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성기 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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