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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구제역 재난과 선동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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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구제역 재난과 선동 정치

입력
2011.01.2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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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영국에서 구경한 의회정치의 단면이 인상 깊었다. 주요 이슈마다 집권당과 야당 대변인이 언론에서 열띤 토론을 한다. 언뜻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국방 경제 보건 복지 농촌 등 분야마다 공식 대변인을 맡은 의원이 따로 있었다. 전문적 식견과 논리도 놀라웠다. 당의 노선과 셈법을 좇기 마련이지만, 논리가 탄탄하고 허투루 내뱉는 말이 없었다.

새삼 영국 정치 얘기를 꺼낸 건 우리보다 앞서 구제역 재난을 경험한 축산 선진국인 때문이다. 의회 조사위원회는 2001년 2월부터 9개월 동안 양과 소 700만 마리를 살처분한 사태를 국가 위기로 규정했다. 구제역 재난에 영국 정치가 대응한 자세는 우리의'구제역 정치'에 교훈이 될만하다. 일부 전문가와 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까지 구제역 살처분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마당이다.

전문가보다 사이비 주장 판쳐

영국도 30년 만에 발생한 구제역이 재난 상황으로 치닫자, 정부 대응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거셌다. 그 첫째는 구제역이 발생한 당일, 전국적 가축 이동을 막지 않고 검사결과가 나온 사흘 뒤에야 금지한 것이다. 둘째는 예방백신 접종을 하지 않고 살처분 처리를 끝내 고수, 재앙을 키우고 축산농민과 방역 종사자 등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다.

논란은 선정적 언론이 "국립연구소에서 구제역 바이러스 샘플이 도난 당했다"고 허무맹랑한 보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생물학 테러'공포를 노린 거짓 기사는 그만큼 민심이 어지러운 상황을 반영한다. 다만 권위 언론과 정치는 휘둘리지 않고 냉정을 지켰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던 구제역이 수그러들 무렵, 하원 환경식품농촌위원회가 여야 공동 보고서를 채택한 것이 대표적이다.

청문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 요지는 엄격한 가축이동 금지조치가 늦었지만, 유럽연합 지침보다 강력한 예방적 살처분을 고수한 채 백신 접종을 피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백신은 효과가 불완전하고, 소비자들이 백신 접종 가축의 고기와 우유를 기피하는 것 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를'우리 증거가 제기한 핵심 이슈'로만 규정, 본격 조사는 왕립 과학협회(Royal Society)를 비롯한 분야별 전문가 위원회에 맡겼다.

왕립 협회는 1년 뒤 보고서에서, 제때 전국적 가축 이동을 금지했으면 살처분을 절반까지 줄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우제류 가축을 보호하기 위한 예방적 백신 접종(Prophylacticaccination)은 막대한 비용 등을 고려할 때 긴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다만 구제역 농가를 멀리 에워싸고'방화벽'을 쌓는 긴급 링(ring) 접종은 감염 및 위험 가축의 살처분에 부가적으로(adjunct)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또 살처분 가축 소각은 참상과 악취, 다이옥신 오염 등의 문제가 크다며, 매몰 처리가 낫다고 결론지었다.

영국의 교훈이 얼마나 참고할 만 것인지 가늠할 능력은 없다. 다만 늘 그렇듯 진짜 전문가들의 정직한 의견보다 사회 곳곳에서 목청높이는 사이비들이 왜곡된 논쟁을 주도하는 꼴은 한심하다. 이를테면 야당은 지나간 정부는 고작 30억 피해로 구제역을 막았다며 막대한 방역비용과 소비 기피 등 백신접종 후유증은 감춘다. 투자전문가로 활동한 고승덕 의원이 "20억 수출을 위해 230만 마리를 살처분하고 2조원을 낭비했다"고 주장한 것은 더욱 황당하다. 정부와 민간의 숱한 전문가들이 그만한 분별이 없었을까.

정신적 치유와 극복 막는 선동

2001년 재난 이후 영국 학계는 다양한 연구를 내놓았다. 피해 농민과 방역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보건사회적 영향을 조사한 보고서는 "고통을 사회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정부가 책임을 피할 때, 인위적 잘못이 재난을 키웠다고 여길 때 치유와 극복은 더욱 어렵다"고 진단했다. 영국 정부가 그랬듯, 정부의 잘못은 서둘러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적 사실과 동떨어진 주장으로 상처를 헤집는 것은 무책임한 선동일 뿐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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