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미국 월드컵 최종 예선을 한국에서는'도하의 기적', 일본에서는'도하의 비극'이라 부른다. 당시 한국은 일본에 0-1로 졌지만 최종전에서 북한을 3-0으로 꺾고 기사회생했다. 반면 일본은 사상 첫 월드컵 본선행 꿈에 부풀었지만 최종전에서 이라크와 2-2로 비겨 한국에 본선 진출권을 빼앗겼다.
18년의 세월이 흘렀고 한일 축구는 다시 '운명의 땅'에서 외나무다리 승부를 벌인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이 25일 오후 10시 25분(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알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1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일본과 맞붙는다.
라이벌전 승부는 기싸움에서 갈린다. 양팀 '에이스'의 활약이 중요한 까닭이다. 박지성(30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일본전에서'센추리 클럽(A매치 100회 출전)'가입을 장식할 축포를 노린다. 반면 가가와 신지(21ㆍ도르트문트)는 박지성을 뛰어 넘어 '아시아 축구의 지존'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박지성과 가가와의 맞대결은 두 사람이'한일 축구의 압축판'격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강인한 체력과 투지는 일본이 따라올 수 없는 한국 축구의 장점으로 여겨져 왔다. 박지성은 이번 대회에서'산소 탱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골과 도움을 올리지 못했지만 쉼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상대 수비진을 정신차리지 못하게 한다. 이란과의 8강전에서는 육탄전도 마다하지 않는 승부 근성을 발휘했다.
일본 축구는 한국에 비해 체력과 정신력에서 떨어지지만 섬세함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가와의 특징이 이와 같다. 173cm, 64kg의 왜소한 체격이지만 빼어난 기술을 앞세워 2010~11 독일 분데스리가 전반기 MVP(17경기 8골 1도움)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아시안컵에서 침묵하던 가가와는 카타르와의 8강전(3-2)에서 2골을 터트리며 부활을 알렸다. 후반 45분에는 현란한 개인기로 상대 문전으로 침투, 결승골의 발판을 만들어냈다.
이번 한일전은'영국과 독일의 대리전'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한국의 해외파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일본의 해외파가 독일에서 많이 활약하고 있는 탓이다. 이 같은 현상은 박지성과 가가와의 선전에 힘입은 바 크다.
2005년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은 한국 선수들의 잉글랜드행 러시를 불러왔다. 가가와는 지난해 5월 독일에 진출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후 일본 선수들의 독일행에 가속이 붙었다. 마키노 도모아키(히로시마)가 지난달 쾰른과 계약했고, 오카자키 신지(시미즈)는 슈투트가르트 입단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전(0-0)에서는 박지성이 무릎 부상으로 결장해 가가와의 맞대결이 성사되지 못했다. 한편 영국의 베팅 전문 사이트는 대부분 일본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 윌리엄 힐이 한국에 2.50, 일본에 2.62의 배당률로 한국의 우세를 점쳤을 뿐 유니베트와 베트 365, 유로 베트는 모두 일본 승리의 배당률을 더 낮게 책정했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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