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의 촉망 받던 조각가 구본주는 2003년 경기도 포천에서 차에 치여 사망했다. 유족은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법원은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가해자 측 보험사는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면서, 고인이 주로 건물의 대형 상징물 제작 등 육체노동에 종사했으므로 도시 일용(日傭)노임이 기준이 돼야 하며 정년도 육체 노동자에 준하는 60세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직자의 사고사에 대해 법원은 일반적으로 도시 일용노임을 산정기준으로 삼는다. 보험사 주장대로라면 예술가는 무직자다. 예술계는 반발했다. 대책위가 구성되었고 1인 시위와 서명운동이 이어졌다. 국회의원 14명이 항소 취하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험사에 보내기도 했다. 소송은 조정을 거쳐 원심 판결을 따른다는 조건으로 종결되었지만 파장은 적지 않았다.
이 사건이 예술계에 일으킨 논쟁 중 하나는 예술인 복지에 대한 것이었다. 사건의 여파와 함께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 향상, 기초생활과 사회적 신분 보장을 위한 정책이 정부 차원에서 논의된다는 말이 있었다. 2009년에는 예술인들의 복지를 위한 문화예술진흥법이 입법 예고되기도 했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예술인 복지제도가 시행된다는 소식도 들렸다.
구본주 사건이 일어난 지 8년이 흘렀다. 예술가의 위상과 사회적 인식, 복지 문제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아무것도 없다. 입법 예고되었던 예술가복지법도 잠잠하다. 예술인들은 여전히 4인 가구 최저 생계비 120만원에도 못 미치는 수입으로 복지 사각지대에서 위태롭게 살아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술인들은 서로 신기하다고 한다. 일정한 수입도 없으면서 창작 활동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많은 미술인들이 최근 논쟁을 일으킨 무상복지에는 무관심하거나 반대한다. 아이들 급식비가 만만치 않고 병원비가 두려워도 무상은 안 된다고 한다. 자신의 경제 상황과 전혀 다른 의견을 보이는 것은 정치적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예술계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계를 돌보기도 버거운 예술인들은 복지를 위한 법 제정에 소극적이거나 자신과는 무관한 거창한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보름 전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51세의 이원일 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상하이 비엔날레 전시감독, 독일 ZKM 아시아현대미술전 공동 큐레이터, 스페인 세비야 비엔날레 큐레이터 등을 맡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그였다. 주위에서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는 주요 공ㆍ사립 미술관에서 일했지만 박봉과 비정규직의 불안한 고용 상태였다. 화려한 명성에 가려진 큐레이터의 쉽지 않은 삶이 죽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가 경제적으로 가족에게 남겨준 것은 없다. 사회보장제도라도 있었다면 어린 두 아이와 가족을 바라보는 미술인들의 근심이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이원일 씨의 죽음으로 예술인들의 불안정한 수입과 복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미술계에 되살아나고 있다. 미술인들도 이제 정치적 관점을 떠나 순수한 자신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복지 문제를 판단하는 것이 최소한의 생활 보장을 위한 입법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생계가 벅찬 미술인들에게 적극 관심을 가지라고 하기도 미안한 일이지만, 예술가 자신의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예술가들은 여태껏 붓 한 자루 들고 세파를 헤쳐 왔다. 외줄 타듯 위태로운 삶에 자칫 떨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그물망 하나는 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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