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
이 외딴 골목길
빗방울도 처마에 부딪혀
자주 발 딛지 못하는 곳
길이라기보다는 틈
낡은 장롱 같은 집들의 틈
그 틈, 더 좁아지지 않도록
시멘트로 다져놓았다
길인 듯 아닌 듯
숫기 없는 사람은 그 앞에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인기척 없는 집들의
인적 없는
이 외딴 골목길
스티로폼 상자와 고무 양동이 안에
나팔꽃 봉숭아가 피고 지던 흙이 굳어 있다
불 안 드는 빈방처럼
이, 어린애 같아 보이는 길
정작은 나이배기일 것 같은 길
시멘트가 빈틈없이 깔려 있는
그러나 이 야성적인 길.
● 삶은 그 자체가 거대한 언어이다. 길은 오고 가는 자들이 공동 창작한 문장이다. 길을 읽으면 그 길가의 삶들이 보인다. 길가의 내용물이 늘 엎질러져 있는 골목길처럼 길은 간신히 길일 때 더 길답다.
막스 피카르트는 에서 ‘침묵은 그 존재와 활동이 하나다’라고 했다. 필히 두 기점 이상을 잇고 있는, 잇고 있어야 하는 길도 존재와 활동이 하나가 아닐까. 길은 길인 이상 휴식을 버리고 나름대로의 운명에 최선을 다 한다.
길을 흔들면 길가의 것들이 쉽게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길이 골목길이다. 아니, 그 반대로 악착같이 붙어 가장 안 떨어져나갈 것 같기도 하다. 숫기 없는 사람 발길을 돌려놓을 것 같은 골목길이라니! 골목길에 대해 무슨 왈가왈부가 더 필요하겠는가. 절창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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