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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완서 별세/ 추모사 "살구꽃 화사한 웃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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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완서 별세/ 추모사 "살구꽃 화사한 웃음처럼…"

입력
2011.01.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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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발치 박완서 선생의 서재 뜰 한쪽엔 오래된 살구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살구나무는 해마다 봄이면 온통 하늘을 가릴 듯 연분홍빛 화사한 꽃을 피워내고는 했다. 그 살구나무를 선생께서는 특히 사랑스러워 하셔서 꽃이 피면 그 꽃그늘 아래 글쟁이 동무들 모여앉아 하모니카도 불고, 노래도 하고, 문학도 이야기하며 왼종일 놀았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우스개소리라도 하면, 선생께서는 소녀처럼 수줍게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살구꽃보다 더 화사한 웃음을 터뜨리곤 하셨다.

그 살구나무 꽃꽃마다 열매가 맺혀 노랗게 익어가는 늦가을 무렵이면 선생께선 또 어김없이 손수 종일 불에 다려 시큼달콤한 살구 잼을 만드시곤 했는데 그렇게 만드신 살구 잼은 큰 보물인양 병병마다 담아 가방에 넣고 오셔서 가난한 후배 문인들에게 나눠주셨다.

오호라, 그런데 아직 봄은 오지 않았고, 살구나무는 미상불 채 꽃망울도 머금지 않았는데, 문득 이 겨울 아침 선생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귀청을 때린다. 일순 사방이 깊은 정적 속에 빠져드는 듯하다. 발 빠른 뉴스는 어느새 천지사방에 비보를 전하고, 멀리 옌볜에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박완서 선생이 돌아가셨다!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고 나서는데 겨울 하늘에선 어느새 눈발이 슬금슬금 듣고 있다. 아, 박완서 선생이 돌아가시다니! 이천십일년 새해 벽두, 이게 꿈인가 생신가, 아니면 그이의 글제목처럼 아주 오래된 농담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글로는 일세를 풍미하였던 대문장이셨고, 가르침으로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스승이셨던 이 나라의 큰 어른께서 문득,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이제 누가 있어 나지막하게, 그러나 분명하고 기품 있게, 세상의 어둠을 논할 것이며, 상처 많은 이 민족 이 나라 사람들의 가슴에 위로를 전할 것인가!

그동안 선생을 따라 함께 걸었던 세상의 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매화꽃 피는 지리산 화개사 부근이나 비 내리던 리짱의 낡은 호텔 처마 밑…. 새벽이면 혼자 일어나 초를 켜고 책을 읽으시던 모습…. 내 기억 속의 선생은 언제나 가장 높고도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 계셨다. 생각건대 한 작가의 생이란 한 민족의 생과 버금가는 것이다. 하물며 박완서 선생이야! 그이가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으며 그이가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옳고 그름의 의미를 되새겨보았을 것인가. 그리고 그이가 있어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었던가.

아, 잊은 듯 다시 봄은 오고 선생의 뜰 가 살구나무도 어김없이 꽃을 피울 것이다. 님은 가고 없어도 못 다한 소망을 안은 채 가신 님의 하늘 저편 멀리멀리 높게 향기를 토할 것이다. 아, 선생님!

김영현(소설가ㆍ실천문학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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