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의 급사 후 번개처럼 권력을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일한 강적은 동쪽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하지만 4년 여에 걸친 고심 끝에 이에야스는 일단 복종을 결심한다. 그는 영지를 찾아온 히데요시에게 "먼 길 피로도 잊고 오신 전하께 이 이에야스는 황공할 따름"이라는 인사로 분명한 신하의 예를 올린다. 돌발사태가 벌어진 건 바로 그때다. "주군! 변변치 못한 주군!"이에야스의 가신 한 명이 회담장을 가로질러 이에야스 앞에 몸을 떨며 버티고 섰다. 그는 "언제부터 주군이 이처럼 비굴한 사람이 됐습니까?…제기랄!"하는 일갈로 회담장을 뒤흔든다.
■ 일본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莊八ㆍ1907~1978)의 대하소설 에 그려진 1590년 3월의 히데요시와 이에야스 회담 장면이다. '고개는 숙여도 종 노릇은 못하겠다'는 이에야스 측의 속내를 작가는 최고의 예우와 뜻밖의 비례가 버무려진 외교적 사건으로 그려냈다. 일본 전국시대 제후들의 얘기에 불과하지만, 오늘날에도 외교무대에서는 예의와 비례가 다반사로 뒤섞인다. 고도로 기획된 이런 뒤섞임은 외교적으로 공식 입장과는 다른, 이면의 기류를 드러내는 은유법인 셈이다.
■ 최근 미중 정상회담 무대에서도 예의와 비례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국빈 방문인데도 부인을 동반하지 않았다. 백악관은 워싱턴 D.C를 온통 오성홍기로 물들일 정도로 극진한 성의를 보였으나, 정작 존 베이너 하원의장 등 미 의회 주요인사들은 일제히 국빈만찬을 거부했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TV에서 후 주석을 가리켜 독재자라는 표현까지 썼다. 협력을 주조로 내세우면서도, 중국이나 미국이나 예사롭지 않은 비례로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편치 않은 기류를 나름대로 은유한 것이다.
■ 예의와 비례가 뒤섞인 외교적 은유법의 원칙은 공식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예의와 협력이 주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 김장수 전 국방장관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목례조차 나누지 않은 뻣뻣한 악수로 찬사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수장으로서 김 위원장을 충분히 예우했기 때문에 빛난 '비례'였던 셈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외교에선 이런 원칙이 흐려진 것 같다. 어쨌든 협력적이어야 할 외교부 장관은 외교평론가처럼 나서서 중국을 비판한다. 통일부 장관 역시 북한 관리방안에 대한 진지한 모색조차 없이 강경론만 연일 내놓고 있다. 수장들은 그렇게 할 테니 예의와 협력은 졸들이 차리라는 건가?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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