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에서 거액을 탕진한 사람들이 잇달아 소송을 내고 있는 가운데,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아직 대법원 확정 판결이 없는 상태라 상급심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고법 민사28부(부장 장성원)는 강원랜드 VVIP 회원이었던 사업가 A씨가 "강원랜드가 내부규정을 어기고 도박중독자인 나를 출입시켜 115억여원을 잃게 만들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강원랜드는 A씨에게 원심보다 2억2,000여만원 늘어난 11억2,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 권기훈)는 또 다른 강원랜드 VVIP 회원 B씨가 "강원랜드가 출입제한 의무를 위반해 내가 48억여원을 탕진하게 됐다"며 제기한 비슷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들 소송의 최대 쟁점은 도박중독자에 대한 강원랜드의 보호 의무를 어디까지로 봐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A씨는 본인 또는 가족 명의로 3차례에 걸쳐 강원랜드에 출입제한 요청서를 제출했지만, 강원랜드는 A씨의 줄기찬 요청에 못 이겨 내부지침을 어기고 그를 출입시켰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재판부는 "강원랜드의 출입관리지침이 법규의 성격을 갖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A씨처럼 출입 제한과 해제를 반복해 도박중독의 징후가 농후한 상태임을 알 수 있는 상황에서는 지침을 어겼을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A씨가 2차 출입해제 요청 당시 '서류를 다 준비하지 못했지만 해제 조치를 해 준 것에 대해 어떠한 민형사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각서까지 작성하고 잃은 금액에 대해서는 "A씨 스스로 청구권 포기 의사를 표시했다"며 배상액에 산정하지 않았다.
B씨도 A씨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출입제한과 해제 요청을 반복했고 강원랜드는 지침을 어긴 채 그의 출입을 허용했지만 서울지법 재판부의 판단은 다소 달랐다. B씨는 도박한 시점이 2003~2005년으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시효인 3년이 경과, 시효가 10년인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용객이 강원랜드에서 베팅을 할 때 성립되는 개임계약에는 카지노가 불법적으로 출입을 허용해 이용객이 돈을 잃을 경우 이를 돌려줘야 할 '계약상 보호 의무'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 B씨측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출입을 허용하지 말아야 할 의무는 B씨가 카지노에 입장한 후 체결되는 게임계약으로부터 도출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즉 B씨가 정당한 게임룰에 따라 도박행위를 하면서 성립된 계약과, 강원랜드가 출입제한 의무를 위반한 것은 별개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게임계약의 효력을 부정하면서까지 강원랜드에 고객보호 의무를 지울 수 없고, 내부지침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게임계약 자체는 유효하게 성립됐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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