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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상습도박… 강원랜드 카지노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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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상습도박… 강원랜드 카지노에 가보니

입력
2011.01.2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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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데 오지 마. 아침에 날 밝으면 당장 버스 타고 집에 가."

지난 22일 밤 10시 30분께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2㎞가량 떨어진 한 찜질방. 간판만 찜질방이지 찜질 시설은 하나도 없고 3평 남짓한 수면실들만 복도 양쪽으로 쭉 이어져 있다. 젊은 여기자들이 들어서자 대번에 관심이 쏠렸다.

50대 남성 2명이 다가와 "여기 왜 왔냐, 혹시 카지노에 왔냐"고 물었다. 카지노에서 돈을 잃었다고 하자 낯빛이 달라지더니 단호하게 내뱉었다. "다시는 카지노에 가지 마."

이 찜질방에 기거하는 이들은 대부분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재산을 탕진하고 가족과도 연이 끊긴 채 카지노 주변을 전전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카지노 로비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허송세월하는 무리와 자신들을 구분하며 스스로를 '생활형 갬블러'라고 말했다. "정당하게 돈을 벌어 생계도 꾸리면서 도박을 한다"는 것이다.

하룻밤 8,000원(장기투숙은 월 20만원)에 잠을 잘 수 있고, 12인승 승합차가 무료 셔틀로 하루 18차례 카지노와 찜질방을 오가니 이만한 곳이 없단다. 기자가 찾은 곳은 하루 200명 정도 투숙할 수 있는 곳인데, 주변에 비슷한 시설이 4개나 더 있다.

이들 자칭 생활형 갬블러들은 테이블게임 자리를 맡아 놓았다가 15만~20만원을 받고 팔거나, 카지노에서 1인 1회 베팅 한도액인 30만원보다 큰 금액을 베팅하려는 도박꾼들과 짜고 대리 베팅(소위 '투 핸드')을 해주고는 돈을 받는다. 도박에 빠져 자리를 옮길 생각도 하지 못하는 돈 많은 꾼들에게 음료수를 갖다 주는 등 시중을 들고는 개평을 얻기도 한다.

이렇게 생긴 돈을 그들은 또 다시 도박 밑천으로 삼고, 도박하다 남은 몇 만원의 돈으로 찜질방비와 식사를 해결한다. 자칭 생활형 갬블러들은 "그래도 근근이 삶을 이어갈 수 있는데다 '좋아하는 도박'도 할 수 있으니 이 생활을 반복한다"고 말한다. 한 40대 남성은 "강원랜드 주변에는 사북역에서 노숙하는 사람, 찜질방이나 원룸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다 합치면 아마 이런 사람들이 1,000명은 훌쩍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수렁을 빠져나올 방법은 없는 걸까. 찜질방에서 만난 김모(50)씨는 7년째 강원랜드 근처의 원룸과 찜질방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건설중장비 대여사업을 했다는 그는 2003년 강원랜드 인근 도로 설비 공사를 하러 왔다가 카지노에 첫발을 들였다. 재산 6억원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가족도 흩어졌다.

김씨는 아이들이 가슴에 사무치는 듯했다. "내가 애들을 일찍 낳아서 아들 둘이랑 나이 차가 얼마 안 나. 같이 당구 치고 목욕탕 가고 친구처럼 지냈어." 그는 밤에 자려고 누우면 옛 생각이 나 흐느껴 울 때도 많다고 했다.

도박을 끊으려는 시도를 안 한 건 아니다. 재작년에는 굳게 마음먹고 강원랜드를 떠나 서울에서 중장비 관련 일자리도 얻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카지노 떠나니까 종일 불안해서 일이 손에 안 잡혀. 내가 받기로 한 월급 200만원은 게임 두 판만 하면 딸 수 있는 돈이라는 생각이 자꾸 맴도는 거야."

찜질방에는 전직이 개인택시 기사, 자영업자 등이었던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자정 무렵 몇몇이 복권을 사왔다. 23일 새벽에 열린 아시안컵 축구 한국_이란전의 결과를 맞춰보려는 것이었다. 김씨도 5,000원어치를 샀다고 했다.

당첨금으로 1,000만원을 받으면 어디에 쓸지 물었다. "아들 둘한테 200만원씩 줄 거야." 잠시 생각하더니 그는 남은 돈의 쓰임새를 말했다. "600만원으로는 정선에서 가까운 영월에 집을 하나 얻어야지. 그럼 카지노에 왔다갔다하면서 살 수 있잖아." 섬뜩했다.

그에게 카지노는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었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그토록 "빨리 떠나라"고 했던 걸까.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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