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해군 청해부대의 삼호주얼리호 구출 작전 성공은 선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군의 완벽한 작전 및 희생정신의 합작품이었다.
군 당국은 작전 이틀 후인 23일 그간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들을 소개했는데 단연 석해균(58) 선장의 기지가 돋보였다. 석 선장은 피랍 후에 엔진유에 물을 타서 삼호주얼리호가 운항하지 못하고 여러 번 멈춰 서도록 했다. 때문에 화가 난 해적들에게 수시로 가혹행위를 당했고 이 과정에서 어깨와 무릎에 골절상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구출작전이 시작되자 선원들은 대부분 선교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는데 과격한 해적 한 명이 일부러 선장을 찾더니 가까운 거리에서 AK소총으로 여러 발 조준사격을 했다”고 말했다. 석 선장은 특수전여단(UDT) 요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배에 관통상을 입었다.
공격시점이 21일로 결정된 과정도 드러났다. 당시 소말리아 해적 9, 10명이 선원 24명을 태운 파나마 국적의 화물선을 납치해 삼호주얼리호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불과 24시간 뒤면 전선이 두 곳으로 늘어날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전에 작전을 끝내야 했다는 것이다.
군의 작전계획도 치밀했다. 해군은 피랍 직후 삼호주얼리호와 내부 구조가 같은 선박을 부산에서 발견해 구출작전에 대비한 예행연습을 반복했다. 군 당국은 “해군의 또 다른 특수요원들이 이 배를 손금 보듯 면밀히 분석해 작전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영상으로 최영함에 보냈다”고 설명했다.
삼호주얼리호가 화학물질 운반선이기 때문에 무자비한 진압공격에 따른 안전문제가 우려되기도 했다. 이에 군은 삼호해운과 화학분야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책 찾기에 골몰했다. 배에는 메탄올과 인산, DMF 등 3가지 화학물질이 실려 있었는데 다행히 삼호주얼리호에 있는 57개의 격실이 일종의 방탄효과를 갖기 때문에 링스헬기 등에서 기관총으로 사격을 해도 폭발위험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때문에 구출작전에 막강 화력이 동원될 수 있었다.
당시 구출작전은 오전 4시58분(현지시각)께 시작됐지만 이미 오전 3시30분께부터 미 해군의 P-3C 해상초계기가 삼호주얼리호 상공을 날고 있었다. 미 해군은 작전이 시작된 직후인 오전 5시12분께 “좌현 선미 3명, 선교 4명, 중갑판 4명이 식별됐다”며 해적들의 위치를 알렸고, 청해부대는 “고맙다. 작전에 참고하겠다”고 화답했다. 또한 최영함은 양 옆에 탑재된 3척의 고속단정을 해적들 모르게 바다에 띄우기 위해 오른쪽 왼쪽으로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시야를 가렸다.
해군은 선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따라서 본격적인 사격이 시작되기 직전인 오전 5시29분께 최영함은 VHS 상선검색망(16번 채널)으로 삼호주얼리호를 한국어로 호출하며 “선원 여러분, 잠시 후에 우리 해군이 여러분의 구조를 위해 공격할 것입니다. 가능한 한 안전구역으로 대피하고 외부로 나오지 마십시오”라고 미리 알렸다.
작전에 직접 참여한 요원들뿐 아니라 후방의 장병들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18일 1차 작전에서 부상한 검문검색대장 안병주 소령을 대신해 한국에서 파견된 오현석 소령은 비록 작전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오만에서 대기하던 중 수술대에 오른 석 선장에게 혈소판을 제공했고, 다른 장병 3명도 헌혈에 동참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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