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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의 따뜻한 바둑 이야기] 정관장배 7연승 신화 문도원 역경 딛고 활짝 핀 '역전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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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의 따뜻한 바둑 이야기] 정관장배 7연승 신화 문도원 역경 딛고 활짝 핀 '역전의 여왕'

입력
2011.01.2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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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퐁퐁퐁퐁퐁.

하얀 조약돌이 수면 위로 나는 물수제비처럼 무려 일곱 번을 힘차게 뛰어 올랐다. 신묘년 새해 벽두에 중국 항저우를 무대로 펼쳐진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최강전 대역전 드라마가 당찬 신예 문도원의 열연으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

매일 오후 세시부터 퇴근시간 무렵까지 한반도의 바둑팬들은 좌불안석, 좀처럼 편안하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TV 앞에서 마냥 서성거렸다.

단 한 판도 편하지 않았던 문도원의 바둑. 그러나 묘하게도 후반에 접어 들면 마치 정해진 길을 가듯 기막힌 반전을 만들어 내면서 기어코 승리를 나꿔 챘다.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만 스무 살의 문도원이 새해 아침 바둑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끊임없이 화두를 던졌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반드시 어딘가에 활로가 있을 겁니다."

문도원은 199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그림 조각 맞추기 퍼즐에 신통한 재주와 집중력을 보여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얘 희한하네. 혹시 영재 아닐까?" 부모들은 대개 그런 희망성 환상을 품는다.

어머니 장태경씨는 도원이를 집 근처 바둑 교실에 보냈다. 부산의 이정상바둑교실 원장이 첫 스승이다. 낯가림이 심한 도원이는 바둑 교실에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종일 바둑돌만 만졌다. 내성적인 성격이 더 심화될 것 같아 다른 학원에 보낼까 했는데 도원이는 오로지 바둑만 좋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IMF 위기로 아버지가 퇴직하면서 대구로 이사하게 됐다. 자연히 집안 형편도 어려워졌지만 부모님은 바둑 공부를 계속시켰고 기재가 보인다는 말에 바둑책에 적힌 저자 연락처로 무작정 전화를 걸어 상담을 청했다. 그가 바로 오랫동안 한국기원 연구생 사범을 맡아 명조련사로 알려진 프로기사 강만우 9단이었다. 강9단이 흔쾌히 도원이를 만나 테스트를 해보더니 "싹수가 있다"며 장수영도장을 추천해 주었다. 가족들은 도원이의 미래를 위해 무작정 상경을 결심했다. 도장이 가까운 갈현동에 자리를 잡았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도원이의 바둑 공부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도원이는 지금까지 제 기억에 단 한 번도 부모 속을 썩여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좀처럼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아이지만 말없이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하거든요." 도원이는 연구생 시절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다. 박지연 이슬아 등 워낙 뛰어난 친구들이 같은 또래여서 좀처럼 벽을 뛰어 넘기 어려웠다. 연구생 3조에서 4조로 강등한 날 도원이가 아무 말 없이 현관문을 들어서더니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다가와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참 동안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그런 딸을 안고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원아. 힘들면 바둑을 그만 둬도 좋아. 넌 지금부터 공부를 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러자 도원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럴 거면 우리가 왜 서울로 왔나요? 끝까지 해볼께요." 오히려 도원이가 엄마를 달래고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역경을 딛고 입단한 문도원이 드디어 정관장배를 통해 '역전의 여왕'으로 활짝 피어났으니 내력을 아는 이들이라면 저절로 박수를 치게 될 것이다. 지난 주 일요일 아침 서울 은평구 갈현동, 문도원이 사는 동네를 찾아가 커피를 함께 마셨다.

_이번 정관장배처럼 바둑팬들이 한마음으로 가슴 졸이며 응원했던 적이 드문 것 같아요. 고생 많았죠?

"고생은요. 하루하루 편한 마음으로 두었어요. 오히려 내용이 별로 좋지 않아 부끄럽습니다. 대부분 상대의 실수 덕분에 이겼잖아요. 사실 제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미완성 교향곡을 얼떨결에 발표해서 제 내면이 전부 노출된 것 같아 떨떠름하다고나 할까요? 너무 과분한 사랑을 갑자기 한 몸에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진정성이 듬뿍 담긴 고백이라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친 김에 오는 3월 서울서 열리는 2라운드서도 연승 행진를 계속해 서봉수의 진로배 9연승을 넘어서는 10연승 신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종서는 바둑 동네의 소문난 이야기꾼으로 인터넷바둑 사이트 타이젬에 대하 바둑 소설 '낭만기객'을 연재하고 있다. 전국의 바둑 현장을 누비며 다양한 바둑 콘텐츠를 발굴, 소개해 지난해 대한 바둑협회로부터 바둑 홍보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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