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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뮤지컬사' 펴낸 박만규 전 국립가무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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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뮤지컬사' 펴낸 박만규 전 국립가무단장

입력
2011.01.2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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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계에 있는 후배들이 교과서식의 책을 잘 안봅니다. 누군가는 한국 뮤지컬을 쉽게 소개하는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서 사례 중심으로 통사를 정리하는 데 10년을 매달렸죠.”

한국 뮤지컬의 산 증인 박만규(73)씨는 <한국 뮤지컬사> (한울 발행) 를 펴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박씨는 1961년 창단된 한국 최초의 뮤지컬 전문극단 예그린의 기획제작실장이었고, 이 극단의 후신인 서울시립가무단(현 서울시뮤지컬단) 단장도 지냈다. 예그린은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후원회장을 맡아 남북 문화 교류 등에 앞세웠던 극단이다.

1,008쪽 분량인 <한국 뮤지컬사> 는 판소리 등 우리 음악에 기반을 둔 일제강점기 국극과 악극 대본을 비롯해 서양 음악과 춤이 가미된 옛 한국 뮤지컬의 공연 정보를 극본, 연출, 배우, 안무가까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2000년부터 3년 동안 한국 뮤지컬계 인물을 정리하려고 했어요. 헌데 하다 보니 한국 뮤지컬을 통사적으로 설명해야겠다 싶어서 7년을 더 하게 된 거죠.”

그의 열정은 놀라울 정도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옛 공연자를 만나고 증언과 자료를 수집했다.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남아 있는 것보다 없어진 자료가 훨씬 더 많았다. 국극이나 악극을 했던 사람들 중에는 ‘딴따라’로 손가락질 받았던 상처 탓에 전력을 숨기려는 이도 많았다.

“제대로 된 기록과 자료, 사진이 거의 없었습니다. 뮤지컬 극본이나 포스터 하나도 보존 이 안 돼있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니까요.”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동료들의 힘으로 다시 일어섰다.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견우직녀’(1941)의 극본을 쓴 서항석(1900~1985ㆍ전 중앙국립극장장)씨와 1984년 11월 24일 창작극 ‘성춘향’공연 둘째 날 세종문화회관 분장실에서 나눈 대화 한 토막이다.

“서 선생이 우리 뮤지컬의 효시가 예그린의 창작극 ‘살짜기 옵서예’(1966)가 아니라 라미라가극단이 공연한 ‘견우직녀’ ‘신생 제1과’라는 것 아니에요?”

이후 확인에 들어간 박씨는 공연평론가 박용구씨가 쓴 <음악의 주변> (1970)에서 관련 기록을 보고, 이 두 작품이 한국 최초의 뮤지컬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그 책은 라미라가극단의 ‘견우직녀’에 대해 “대사와 노래와 춤으로 엮어지는 대중적 문화예술, 오늘에서 보면 틀림없는 뮤지컬 형태를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 두 작품을 한국 뮤지컬의 효시로 보는 근거로 모두 노래에 레치타티보를 사용했으며, 독창 합창을 번갈아 했고, 재즈풍의 음악이 들어간 점, 이전의 악극과 달리 안무가가 있어 솔로와 듀엣, 군무를 췄다는 점 등을 든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1966년 ‘살짜기 옵서예’ 초연 당시 연출을 맡았던 임영웅(극단 산울림 대표)씨는 “두 작품은 배역의 캐릭터성, 노래와 춤과 드라마의 연결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박씨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보다 앞선 일제강점기에 김해송 윤복길 등이 서양음악을 춤추고 노래한 KPK악단 공연을 뮤지컬 효시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국 뮤지컬의 효시에 대해서는 학계와 뮤지컬계 의견이 서로 다르다. 학계는 ‘포기와 베스’(1962)라고 본다. 반면 한국뮤지컬협회는 ‘살짜기 옵서예’라고 보고, 이 작품이 초연된 10월 넷째주 월요일을 뮤지컬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기록문화가 부박한 한국 풍토에서 학자가 아닌 원로 예술가가 10년 동안 집념을 불태우며 보인 투지의 가치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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