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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공무원 한 명이 800가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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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공무원 한 명이 800가구 담당

입력
2011.0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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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근무했던 주민센터(동사무소)에서 제가 맡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450가구였어요. 하루에 두 집을 찾아 다닌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1년에 한 번밖에 못 가는 상황이었죠."

서울 H동 주민센터에서 지방복지직 공무원(사회복지사)으로 일하는 A씨. 지난 17일 복지 현장 주민센터를 찾은 기자에게 '찾아가는 복지, 발굴형 복지'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고령화와 양극화가 심해지고, 절대빈곤율도 증가하면서 복지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 복지사업의 최일선인 주민센터는 인원부족과 쏟아지는 사업에 끼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주요복지 사업을 토대로 계산해보니 복지사 1인이 평균 856명 가량의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었다(표 참조).

"그거 아세요? 저만 방문복지 하겠다고 밖에 나가서 어려운 분들 찾아 다니면,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 민폐가 돼요. 제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밀려드는 업무를 몇 안 되는 동료들이 모두 맡아야 하거든요." H동 주민센터에 복지사는 A씨를 포함해 3명(행정ㆍ복지 겸임하는 공무원 3명 별도지정). 각각 전문성을 위해 분야와 가구를 나눴는데,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신청자가 찾아왔을 때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복지사가 업무를 대신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복지사가 복지정책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니, 왜 그럴까. A씨는 "현장 복지공무원들이 알아야 할 지침문서를 모두 쌓아봤더니 두께가 이만큼 되요"라며 탁자 위에 약 1m가량 높이로 손을 올렸다. 그나마 자주 바뀌어서 완전한 숙지가 어렵다고 한다. 그는 "신청자는 알고 오는데, 복지사들은 그 사업을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워낙 지침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창피하더라도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고 알아보지요"라고 말했다. 이날만 해도 서울시에서 '아리수'생수를 저소득층에게 나눠줄 테니 파악하라는 지침이 추가로 내려왔다고 한다.

A씨가 일하는 H동 주민센터는 나은 편이다. 소속 구청이 행정직을 복지직으로 많이 전환했기 때문이다. A씨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자 170가구 정도를 맡고 있으니, 이전 주민센터에서 근무할 때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그래도 현장 방문이 어려워 주민센터 지하를 복지관으로 바꾸는 공사를 하고 있다. 찾아가기 어려우니, 대신 많이들 찾아오시라는 뜻이다. 신청자에 한해 혜택을 주는 것이 국내 복지정책의 원칙이기 때문에 와서 많이 요구하는 사람이 그만큼 얻을 수 있다. A씨는 "복지현장 문제들은 우선 저희(복지사)들 책임이죠"라고 인원부족만 탓하지는 않았다. 그는 "사실 해줄 것도 없으면서 자꾸 찾아가는 것도 미안하더라구요. 냉장고 문 열어보고 같이 한숨 쉬면서 해줄 것 없는 것보다는, 찾아오시기 쉽게 하고 찾아오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드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복지현장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주요 복지사업을 두고 부처간 떠넘기기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저소득층 학생이 무료급식을 신청할 때 부끄러움을 줄여주기 위해 신청을 학교가 아닌 동사무소에서 할 수 있도록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반면, 보건복지부 등은 우선 인력확충 등을 요구하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복지직 공무원이 늘어나야 한다는 점에는 합의하고, 복지부와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간 협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업무 과중이 해소될 만큼의 인원확충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복지사와 주민들의 돈독한 관계는 이어지고 있었다. 기자와 이야기하는 도중 A씨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홀로 사는 할머니가 A씨에게 전화를 했다. 팥죽하고 빵을 준비해놓을 테니 와서 점심 먹으라고 조르는 눈치다. A씨는 "할머니 저 빵 안 먹어요. 팥죽이면 충분해요"라고, 찾아 뵙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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