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옥 지음
실천문학사 발행ㆍ116쪽ㆍ8,000원.
새가 떠난 자리에서 흔들리는 것은 가지 끝 이파리들이다. 새 한 마리는 금세 날아가지만, "남겨진 이파리들은 저들끼리 몸을 비비고"('여운에 기대다' 중), 종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199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배영옥(45ㆍ사진)씨의 첫 시집 <뭇별이 총총> 이 발 디딘 곳이 저 나뭇가지처럼 누군가가 떠나고 난 빈자리다. "어머니는 먼 남쪽으로 밥 지으러 가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자리이며 "청동오리가 떠나 버린 연못" 같은 곳이다. 수록된 55편의 시들은 바로 그 곳에 남은 자들의 그리움과 괴로움, 갈증을 이야기한다. 뭇별이>
으레 그렇듯 상처를 받는 쪽은 떠난 자보다 남은 자. "물이 빠져 나간 자리엔/ 반드시, 누군가의, 어두운 상처가/ 흔적으로 남는다"('물은 결코,'중) 시집은 그러나 남은 자의 서러운 정서 대신 이상하리만치 서늘한 긴장이 넘친다. '가시 돋친 상처로 반짝이는 별' '비린 쇳내가 덮치는 마을' '기차가 남긴 매캐한 기름냄새' 등 바삭거리는 불모의 풍경이 펼쳐진다.
등단 12년 만에 낸 시집. 그 세월의 더께만큼 시어가 응축되고 절제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인은 남은 자들의 전매 특허인 처연하고 애달픈 마음의 기름기를 쏙 빼버린다. "너라는 꽃을 지우기 위해/ 나는 얼마나 긴 침묵과 싸워야 했던가/ 스스로 씹어 삼킨 가시는 또 얼마나 깊이 폐부를 찔러댔던가"('너라는 꽃을 지우기 위해' 중). 살갗 벗겨지는 피나는 자기 싸움이 깔려 있다.
이는 시인 스스로 자신이 처한 빈 자리가 숙명이라는 것, 떠난 이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고 자각한 데서 나온 것 같다. 배씨는 "20대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인이 애당초 말하고자 한 빈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채울 수 있는 실연 등이 아니라 영원히 대체할 수 없는 죽음이 남긴 흔적인 셈이다. 이런 빈자리에 대한 인식은 존재의 근원적 틈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물 속의 왜가리가/ 물 밖의 왜가리를 올려다 본다/(…)/ 서로 바라보다가/ 오직 보이는 것만 들여다보다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몸 밖의 그리움이여"('그림자' 중). 삶과 죽음이 화해할 수 없듯 시인은 그 틈새를 연민의 감정 등으로 애써 덮지 않으며 상처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