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라 돕는 기술… 특허청과 제휴해 국내 대기업 첫 동참
삼성전자가 '착한 기술'을 개발해 가난한 나라 돕기에 나선다.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ㆍAT)로도 불리는 착한 기술은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개발하는 첨단 기술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물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본 기술을 말한다.
삼성전자는 20일 빈곤국을 돕기 위해 특허청과 제휴를 맺고 적정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보급하기로 했다. 국내 대기업이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 적정 기술 개발에 뛰어든 사례는 처음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특허청이 제공하는 1억5,000만건의 특허 자료를 바탕으로 적정 기술 개발에 필요한 정보를 검색한 뒤 연구개발 인력을 투입해 적정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렇게 개발한 기술은 삼성전자의 해외법인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전달된다. 특허청도 해당 국가 정부와 교섭을 담당하게 된다.
적정 기술의 대표적인 사례는 베스터가르드 프란센사가 2006년에 개발한'생명의 빨대'(Life Straw)다. 이 제품은 흙탕물이 많아 마실 물을 구하기 힘든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개발한 제품으로, 빨대처럼 생긴 휴대용 정수기다. 흙탕물 외에 마실 물이 없을 때 휴대한 이 제품을 이용해 흙탕물을 빨아 들이면 불순물을 걸러내 마실 수 있다.
물론 이 제품이 걸러낸 물이 수돗물이나 정수기물처럼 먹기 좋은 물은 아니지만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생명과 직결되는 도구다. 매일 2리터씩 걸러 먹으면 이 제품은 2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큐드럼도 마찬가지. 한스 헨드릭스가 개발한 큐드럼은 드럼통처럼 생긴 이동 가능한 식수통이다.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고 여기에 줄을 매서 붙잡아 끌면 바퀴처럼 식수를 담은 통이 굴러간다.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개발한 도구로, 한 번에 75리터의 물을 담아 나를 수 있다.
이처럼 적정 기술은 개발 도상국 사람들을 살리는 '착한 기술'이어서 전세계 많은 사회복지단체, 사회적 기업 등이 관심을 갖고 있다. 사회적 기업 과정을 운영하는 미국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의 경우 아예 적정 기술 개발업체들을 초빙해 강의를 갖기도 했다.
기자가 지난해 5월에 미국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을 방문했을 때 마침 사회적 기업 킥스타트도 이곳에서 적정 기술로 개발한 특수 펌프를 가져와 강의를 했다. 킥스타트 대표이자 개발자인 마틴 피셔 박사가 개발한 특수 펌프는 비가 적게 오는 케냐의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우물에서 물을 끌어와 밭에 뿌려주는 장치다. 당시 피셔 박사는 "케냐의 민주주의를 가져온 펌프"라며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 증대는 더 많은 중산층을 양산하며 국가 경제의 성장과 더 나은 복지제도, 더 나은 민주정치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적정 기술은 기업이 제품이나 돈을 공급하는 것보다 더 많은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꼽힌다. 사회적 기업 전문가인 릭 오브리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킥스타트의 펌프를 보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과 같다"며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술"이라고 평했다.
삼성전자와 특허청도 이번 적정 기술 개발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삼성전자는 세계적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일로 보고 있다. 적정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한민호 삼성전자 디지털시티센터장은 "특허청의 풍부한 특허정보와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결합된 우수한 적정 기술을 개발하겠다"며 "이를 통해 도움을 받는 국가의 국민들이 보다 윤택한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수원 특허청장도 "우리가 가진 기술과 지식으로 개발도상국 국민을 돕는 지식재산 나눔사업"이라며 "우리의 지식재산을 나누는 정신이 전세계로 확산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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