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원양어선 동원628호 피랍에서 지난해 금미305호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7차례 해적 피랍 사건마다 우리 정부는 "해적과의 타협은 없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종착점은 늘 '몸값' 지불이었다. 따라서 21일 삼호주얼리호 구출 작전은 그간 공식화되다시피 해 온 '피랍→장기 억류→ 몸값 지불→ 석방'의 고리를 끊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해적들에 대한 정부 대응의 변화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 대통령은 삼호주얼리호 피랍 첫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어떤 인명 피해가 있어서도 안 된다. 아울러 해적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침을 김관진 국방부장관과 참모들에게 내렸다.
이후 청와대 지하벙커에 마련된 국가위기관리실 상황실을 매일 방문, 실시간으로 해적의 움직임을 보고 받았다. 18일에는 해적들이 몽골 상선까지 추가 납치하려 하자 청해부대에 "도와주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작전 명령을 내린 20일과 21일엔 아예 상황실 보고로 하루 업무를 시작했다. 대통령부터 단호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타협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다는 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정부의 대응 변화는 역설적이게도 역대 최대 '몸값'(950만 달러)을 내고 풀려난 삼호드림호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 사건 이후 해적들은 한국 배를 ' 봉'으로 여기게 됐고, 돈이 되는 한국 배를 물색해왔다는 게 정부 분석이다. 삼호해운 소속 배가 또 다시 납치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도 당시 보고를 받고 "아주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며 관계자들을 질책했다고 한다.
게다가 해적들의 타깃이 참치잡이 어선에서 화물선, 유조선, 화학물질 운반선 등으로 점차 대형화하는 추세다. 무역국가인 한국으로선 해양 수송로 불안으로 우회 항로를 이용할 경우 입게 될 막대한 경제적 피해도 고려해야 했다.
정부로선 단호한 구출 작전을 통해 "해적과의 타협은 없다"는 말이 더 이상 허언(虛言)이 아님을 과시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이번 구출작전 배후에선 외교전도 긴박하게 전개됐다. 외교부는 사건발생 직후 주 케냐 대사관에 현장대책본부를 설치해 국방부 등과 함께 대응책을 준비해왔다. 해적에 대한 군사작전 경험이 있는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헬기 지원을 받는 등 긴밀한 협조 체제도 구축했다. 부상자 치료와 후송 과정에선 오만의 도움을 받았다.
삼호주얼리호에 자국 선원이 타고 있었던 인도네시아, 미얀마와는 외교 채널을 통해 사전 작전 통지 등 협의를 거쳤다. 이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우방국에도 감사를 드린다"며 구출 작전 과정에서 협력한 우방국가들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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