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대학들이 정시모집 합격자를 발표하지 않아 아직 2011학년도 대입 일정이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내년도 대입을 준비하는 재수생들이 주요 입시학원별로 많게는 3배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대입수학능력시험부터 수리 영역의 출제 범위에 미적분과 통계가 추가돼 재수생이 급감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정부의 EBS 수능 연계 정책 실패로 점수가 폭락한 수험생들이 대거 재수에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12일 주요 입시학원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운영하고 있는 재수 선행반에 등록한 수험생들이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늘어났다. 서울 강남에 있는 B학원은 지난해 재수 선행반 인원이 40여명에 불과했으나 올해 120명으로 3배 가량 늘었다. 강남 D학원도 200명에서 300명으로 늘었고, 광화문 D학원도 전년 대비 2배 증가했다. 대치동의 M학원도 선행반 인원이 70% 늘었다.
대입 재수학원은 정시 합격자가 가려진 2월부터 본격 운영되지만 일찌감치 재수를 결심한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선행반이 운영된다. 고3 전체 과정을 1개월 반 동안 복습하는 반, 수학만 집중적으로 학습하는 '수학클리닉' 등이 있다.
예년보다 때이른 '재수 열풍'은 어려웠던 수능 때문이라는 게 입시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임성호 하늘교육 이사는 "EBS 연계만 믿었다가 평소 점수보다 과도하게 떨어진 학생들이 많다. 특히 희망 대학에 원서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시험을 망친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재수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11학년도 수능과 관련해 "예년 수준으로 내겠다"고 공언했었고, 특히 EBS 교재와의 연계율을 70%로 높여 학생들로 하여금 "EBS 교재만 풀면 쉽게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러나 막상 수능이 어렵게 출제되자 학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고, 이주호 장관도 "교과부도 철저히 대비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재수를 선택한 수험생들은 수능 출제범위가 확대된 데 대한 부담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분위기다. 2009년부터 적용된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올해 고3이 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학의 미적분과 통계를 배우지만 이전 학생들은 배우지 않았다. 광화문 D학원 선행반에 등록한 K군은 "미적분, 통계를 추가로 공부해야 하지만 이번 수능 점수가 너무 낮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K군은 "미적분이 어렵다고 하지만 한달 바짝 공부하면 지금 고3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재수생들에게 유리한 입시제도도 수험생들로 하여금 재수를 선택하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사립대학들은 내신성적을 배제하고, 수능만으로 뽑는 이른바 '수능 100%' 전형으로 정시모집 인원의 50~70% 가량을 선발하고 있다. 이런 전형의 경우 내신과 수능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재학생에 비해 수능 대비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재수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 전형은 원래 내신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외국어고 등 특목고 학생들을 겨냥해 만들어졌지만 "1년을 투자해 수능점수를 올리면 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며 '수능 대박'을 노리는 수험생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현행 입시는 수험생이 만족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도 있다. 한 입시전문가는 "가,나,다군별로 학생들은 상향지원과 하향지원을 섞어서 하게 된다.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상향지원한 대학 보다 하향지원한 대학에 합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상향지원해 원서를 넣었던 대학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기 때문에 재수를 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사교육 절감과 과도한 재수생의 양산을 막기 위해 학생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평가하는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수능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데다 일부 대학들의 수능우선 선발제도 등으로 오히려 재수생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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