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진보교육감 갈등]"독립이냐 협의냐" 교육감 권한 해석부터 달라"교육감은 한 건 위주… 교과부는 조정 등한시"
교육계가 씨름판 같다. 학교 급식, 학생 체벌, 학생인권조례, 수능 개편안,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고교 평준화, 자율형 사립고 정책, 방과후학교, 학교 신설비 삭감, 시국선언 및 민주노동당 가입 교사 징계 등을 놓고 교육과학기술부와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샅바싸움 수준의 신경전에 법적 공방, 예산 삭감 등 '큰 기술'도 거침없이 등장한다. 똑같이 교육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양측의 대립은 전방위적인 교육 현안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서울 경기 강원 광주 전남 전북 등 진보교육감 6명은 18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시도교육감협의회를 마친 뒤 '고교평준화를 위한 교과부령 개정을 강력 촉구한다'는 제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교과부에 대한 진보교육감들의 첫 집단행동이다. 그 동안 교육감들은 '진보끼리의 연대'는 자제했었다. 모든 현안은 공식기구인 시도교육감협의회를 통해 논의한다는 입장이었다. 같은 진보교육감이라고 해도 지역별 상황이 다르고, 전국교직원노조 지부장 출신인 교육감과 교수 출신 교육감 간에 이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현안에 대한 교과부의 조치에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있다는 의심이 커지면서 교육감들이 뭉치고 있다. 교과부는 17일 간접체벌 허용 방침을 밝히면서 교육감의 학칙 인가권 폐지도 함께 거론했다. 학칙을 개별 학교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면 교육감들이 제정하는 학생인권조례는 사실상 효력을 잃게 된다.
학교 신설비를 둘러싼 예산 삭감도 논란이다. 교과부는 교육청에서 학교 신설비를 유용해 무상급식 예산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교부금 삭감 방침을 정했고, 이에 교육감들은 "학교 신설 예산을 3년간 분할 집행했던 것은 오래된 관행이었는데 갑자기 삭감하려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이라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양측의 갈등은 진보교육감이 취임한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실시를 둘러싸고, 학생 선택권 존중 차원에서 대체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일부 교육감과 이를 금지했던 교과부의 충돌을 시작으로 자율형 사립고 정책, 민노당 후원교사 징계, 수능개편안, 방과후학교, 전교조와의 단체교섭 등 사안마다 충돌했다. 교과부의 정책에 교육감이 반기를 들거나, 교육감의 정책에 교과부가 딴죽을 거는 양상이었다.
이런 갈등은 교과부와 교육청 간의 역할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논란이 된 학업성취도 평가 실시, 자율고의 지정 및 폐지, 교사 징계 등과 관련해 교육감들은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하지만, 교과부는 "장관이 위임한 권한으로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며 법 해석에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과거엔 교과부가 지시하면 교육청이 집행하는 수직적 관계였으나 지금은 장관과 교육감이 동등한 목소리를 낼 정도로 상황이 바뀐 이유도 있다.
교육 현안이 정치적인 논쟁이 되는 것과 관련해 이주호 장관의 향후 행보와 연관짓는 시각도 있다. 교육계 안팎에선 내년 총선 때 이 장관이 대구지역에서 출마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 교육계 인사는 "실세였던 이 장관이 취임한 이후 정책 조정으로 교육감과의 갈등이 줄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었지만 오히려 정치적, 이념적으로 대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층의 표를 의식해 교육 정책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 강수를 두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일부 교육감들이 한 건 위주의 설익은 정책을 내놓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조정해야 할 교과부가 그 기능을 포기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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