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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3> 스턴트맨 양성하는 '서울액션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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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3> 스턴트맨 양성하는 '서울액션스쿨'

입력
2011.01.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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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 불감증 걸려야 진짜 길라임… 몸으로만 때우는 직업 아닙니다"

1997년 10월의 어느 추운 새벽. 한 스턴트맨이 한강의 서강대교에서 뛰어내렸다. 드라마 속 투신(投身) 장면을 위한 대역 연기였다. 건물 8층 높이(21m)의 다리 난간에서 뛰어 내린 그는 1초도 안돼 물속으로 사라졌다. 이를 지켜보던 무술감독이 갑자기 새파랗게 질려 그가 사라진 곳을 향해 헤엄쳐 들어갔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긴급 투입된 스쿠버다이버가 물속에서 스턴트맨을 건져 올린 것은 20여분 후. 숨을 멈춘 스턴트맨에게 동료들이 달라붙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김민수(43) 무술감독은 사고가 났던 14년 전 그 현장에 있었다. “저도 스턴트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고가 났어요. 그때는 와이어 같은 안전 장비도 없이 몸뚱이 하나 믿고 스턴트를 했어요.” 그는 아직도 어제 일인 듯 당시를 회상했다.

김 감독은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무술감독을 맡았다. 극 중 스턴트를 하는 배우들의 대사에는 그의 고통스런 경험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2003년 8월 영화 촬영 중 같은 팀에 있던 스턴트맨 후배한테 사고가 났어요. 병원에서 정두홍 감독에게 전화를 했죠. 제 첫 마디가 ‘저…’였습니다. 정 감독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왜, 죽었어 살았어’ 그러더라구요. 의사한테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은 뒤였어요. ‘좀 힘들 거 같습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어요.” ‘시크릿 가든’에서 임종수 무술감독(이필립 분)의 “밤에 전화가 오면 죽었는지, 살았는지부터 물어보게 돼”라는 대사는 그렇게 나왔다.

하지만 김 감독은 아직도 현장에서 스턴트액션을 만들고 미래의 스턴트맨과 스턴트우먼을 양성하고 있다. 누군가는 스턴트맨이란 직업을 “인대와 뼈를 바치는 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크고 작은 부상이 많고 자칫하면 목숨까지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모여 있는 서울액션스쿨을 찾아가 봤다.

17일 오전 경기 파주시의 서울액션스쿨에서는 4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짙은 땀냄새를 풍겨 가며 훈련을 하고 있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촬영 장소이기도 했던 이곳(면적 1652㎡ㆍ높이 15m)에는 이제 갓 들어온 20대의 스턴트맨 지망생부터 30~40년 경력의 50대 스턴트맨까지 다양했다. 고난도 액션을 소화해야 하는 스턴트맨 양성소답게 한쪽 벽에는 도검에 창, 봉, 모래주머니, 태권도 방어구, 탄띠, 권투 글러브, 샌드백 등이 즐비했고 반대편 벽에는 힘찬 붓글씨로 쓰여진 ‘武(무)’자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서울액션스쿨은 매년 4월 스턴트맨 지망생을 공채한다. 서류와 면접을 통해 보통 50여명 정도가 신입기수로 들어온다. 하지만 이 중 스턴트맨이 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훈련 강도가 워낙 세 6개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들어온 막내 기수인 권준호(26ㆍ14기)씨는 “첫날 체력훈련할 때는 정말 포기하고 싶었어요”며 “운동 중에 토할까 봐 점심밥은 아예 먹지도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훈련은 체육관 주변 약 5㎞ 구간을 20분 만에 돌파하는 달리기에 이어 왕복 전력 질주, 쪼그려 뛰기, 토끼 뜀 등 한 시간 가량의 기초체력훈련으로 시작된다. 그리곤 격투 등의 현대액션, 도검을 다루는 사극액션 등으로 이어진다. 오전 10시께에 시작한 운동이 오후 5시께가 돼야 끝난다. 이걸 일 주일에 5일 동안 반복한다. 14기도 지난해 50여명이 들어왔지만 수료자는 10여명에 불과하다.

높은 체력과 담력을 요구하다 보니 스턴트를 지망하는 이들은 스포츠맨이나 군인이 많다. 스턴트우먼을 꿈꾸는 김경애(27ㆍ14기)씨는 전직 격투기 선수이다. 고교 2학년 때부터 킥복싱을 시작해 작년 액션스쿨에 들어오기 전까지 전적이 16전 11승 5패. 격투 대회에서 우승을 한 적도 있는 실력파다. 김씨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먹을 써야 하는 격투 장면에서는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어요”라고 웃었다. 경력 5년의 송원종(33ㆍ9기)씨는 특전사 출신으로 4년간 군 생활을 한 뒤 중사로 제대했다. 그는 “까마득한 상공에서 낙하산 메고 땅으로 뛰어내리기도 했는데 스턴트도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말했다.

위험한 일이니 가족의 반대가 큰 것은 당연지사. 경남 창원시에 살던 김지민(25ㆍ13기)씨는 “서울에 6개월간 영어회화 공부하러 간다”,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하던 유미진(23ㆍ14기)씨는 “1년간 서울에서 헬스장 트레이너 실습을 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부모를 따돌려야 했다.

액션스쿨 건물 안에 들어서면 언제나 제일 먼저 들여오는 소리가 ‘퍽’ 하는 충격음. 다음 날인 18일 찾아갔을 때도 이 소리가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20대로 보이는 두 명이 빠른 몸놀림으로 4~5초 동안 10여차례에 걸쳐 주먹과 발차기를 교환하고 있었다. 김 감독은 “서로 어떻게 공격하고 방어할지 정교한 ‘합(合)’을 짠 후 그 공식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이렇게 瞞?촬영에서 멋진 그림이 나오고 다치지도 않아요”라고 말했다. 김영민(26ㆍ13기)씨는 “버스에서 잠을 자다 나도 모르게 손발이 ‘합’대로 튀어나가 망신살 뻗친 경우도 있어어요”라며 웃었다.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스턴트는 몸으로만 한다’는 편견이다. 김 감독은 “스턴트맨은 위험한 장면에서 배우 대신 단순히 ‘몸빵’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배우가 흉내 낼 수 없는 파워풀한 액션을 영화에서 구현하고 자동차 추격신, 고공 낙하 등 그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죠”라고 했다. 실제 서울액션스쿨에서는 와이어액션 등을 하는 장비팀과 자동차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F1팀, 오토바이 스턴트를 개발하는 뉴피스톤팀, 영상을 만드는 편집팀 등으로 분화해 있다.

F1팀에 소속돼 있는 송원종씨는 “뒷바퀴를 미끄러뜨려 곡선 구간을 통과하는 드리프트, 후진하다 한 바퀴 도는 J턴, 제자리에 멈춰 바퀴를 돌리는 휠스핀 등을 배우느라 그동안 부숴 먹은 자동차만 세 대”라며 “자동차 스턴트는 늦은 판단과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연습이 매우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실제 그는 2007년 초 아찔한 경험을 했다. 승용차 두 대가 15톤 트럭을 몰던 자신과 반대 방향에서 시속 80㎞로 마주 오다 가까이 오면 피해야 하는데 그대로 왔던 것. 그는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어 가까스로 사고를 피했다. 알고 보니 승용차 한 대의 앞 바퀴가 상대편 차체에 끼어서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서울액션스쿨에 있는 60여명의 스턴트맨들은 1년에 두 번 꼭 함께 파주시의 벽제납골당으로 향한다. 스턴트를 하다 97년 사망한 이상영(당시 37)씨와 2007년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촬영하다 세상을 뜬 지중현(당시 32) 무술감독의 납골이 그곳에 안치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입기수들은 6개월 과정이 끝나는 10월 이곳에서 스턴트맨으로서 선배들에게 첫 신고를 하고, 의지와 각오를 다진다. “여기 있는 모든 스턴트맨들은 신입기수 참배 때 마음으로 매일 현장으로 뛰어나갑니다.” 김 감독의 말은 배수진으로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변 같았다.

파주=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 스턴트 액션 역사

한국 영화에서 무술감독이란 이름으로 스턴트액션이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영화 ‘장군의 아들’ 시리즈 이후부터다.

그전에 한국 액션영화는 침체기를 맞고 있었다. 60, 7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소자본 액션영화나 홍콩과의 합작영화 등은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스턴트 인력은 TV에서 방영하던 ‘전설의 고향’ ‘긴급구조 119’ 등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90년대 초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시리즈가 나오면서 스턴트계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민수 무술감독도 “당시 ‘장군의 아들’의 김영목 무술감독이 같이 일하자고 해서 대학을 포기하고 20살 때 고향인 전북 익산시에서 서울로 올라왔다”며 “하루 3~4시간만 자며 한강시민공원에서 무술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장군의 아들’ 시리즈로 충무로에 액션 열풍이 불면서 지금 한국 스턴트계를 이끌고 있는 정두홍 무술감독이 99년 강제규 감독의 영화‘쉬리’, 전문식 무술감독이 같은 해 이명세 감독의 영화‘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신재명 무술감독이 2001년 곽경택 감독의 영화‘친구’에서 그 동안 감춰두었던 실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후 ‘조폭마누라’(2001년) ‘태극기 휘날리며’(2003년) ‘말죽거리잔혹사’(2004년) ‘공공의 적’(2008년) ‘전우치’(2009년) ‘아저씨’(2010년)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액션영화의 흥행 돌풍과 함께 스턴트액션도 지금껏 진일보해 왔다.

현재 한국 스턴트 종사자들은 예전보다는 나은 처우와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영화 ‘전우치’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을 맡았던 허명회 무술감독은 “지금도 스턴트맨들이 낮은 임금을 받으며 몸을 혹사시키고 있다는 편견이 있다”며 “하지만 스턴트맨들이 평균 기량만 보여도 연봉 4,000만~5,000만 정도를 받는다”고 말했다.

또 예전에 비해 스턴트맨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장비나 인식도 나아진 편이다. 허명회 무술감독은 “예전에는 와이어도 없이 높은 다리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리게 했다”며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감독들도 스턴트맨의 안전을 위해 보호 장비를 갖추려고 노력하고 너무 위험할 것 같으면 아예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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