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는 올렸다. 행정력을 이용한 물가대책도 총동원했다. 그런데도 물가 불안이 잦아들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는 양상. 어떤 식으로든 추가적인 정책 대응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제 당국이 손에 들고 있는 카드는 환율. 과연 정부가 지난 3년간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고환율 정책을 일부 포기하고 환율 하락(원화 절상)을 용인할까. 당국도 이 문제를 놓고 심사숙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더 악화된 물가 인식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19일 금융연구원 초청 강연에서 “중앙은행 입장에서 (성장보다) 더 큰 관심은 인플레 압력”이라며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난 13일 기준금리 인상 뒤 “인플레 기대심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던 발언보다 수위가 한층 높아진 것. 정부 고위 관계자도 이날 “굳이 우선 순위를 꼽자면 지금 상황에서는 성장보다 물가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의 관리목표상단인 4%를 웃돌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오는 상황. 한 차례 금리 인상과 미시적인 대책 만으로는 인플레에 제동을 걸기 힘들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는데 정부와 한은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금리 또 올리나
이런 인식을 토대로 보자면, 추가 금리인상이 당초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더구나 김 총재는 이날 “미국 경제 성장률이 당초 전망치(2.4%)보다 크게 높은 3.5%가 될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며 “이렇게 되면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4.5%)도 높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금리를 올릴 여지가 더 충분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는 추가 금리인상 카드에 여전히 매우 조심스럽다. 금리 올리면 당장 대출이자부담이 커지게 되는 서민ㆍ중산층들로부터 원성이 나올 텐데, ‘친서민’정부로선 곤혹스런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지난 13일 금리인상은 어쩔 수 없었다 해도, 향후 공격적인 금리인상엔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
오석태 SC제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정부는 물가상승 압력을 제한하면서도 성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싶을 것”이라며 “한은이 정부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 금리 인상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환율 카드는
적극적 금리 인상이 어렵다면, 물가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환율뿐이다. 환율을 낮춤으로써 국제 원자재 및 원유 수입가격을 낮추고, 그럼으로써 국내 소비자물가상승압력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다.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선 금리만으로는 곤란하며, 금리-환율의 양동작전을 펴야 인플레 압력을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란 처방이 나오고 있다. 노무라증권도 최근 보고서에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분 만큼 원화 강세를 용인해야 금리정책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금리인상은 충격이 전 경제주체에 무차별적으로 가해지지만, 환율하락은 기업들에게만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현 정부 임기 내내 고집스럽게 매달려 온 고환율 정책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인위적인 환율 하락은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달러화가 여전히 약세이고 ▦경상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내고 있으며 ▦외국인주식자금도 계속 유입되는 만큼, 원화절상여력은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 정부 고환율 정책의 상징 인물인 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 후보자가 경제수석에서 물러난 것도 환율정책에 일부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낳는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굳이 원화 절상을 적극적으로 유도하지는 않더라도 지금까지처럼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끌어올리지는 않을 것으로 봐야 한다”며 “적절한 금리 인상과 원화 절상 용인 등 금리와 환율의 적절한 정책 조합(policy mix)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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