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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아이 엠 러브, 금단의 사랑… 계급과 자본을 초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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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아이 엠 러브, 금단의 사랑… 계급과 자본을 초월하다

입력
2011.01.1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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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색창연하다. 분명 21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모던보다는 클래식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듯하다. 구식 아니냐고, 애늙은이 식 화법을 구사하는 것 아니냐고 섣부른 예단을 할 필요는 없다. 이탈리아 영화 ‘아이 엠 러브’는 고전의 풍미와 현대적인 감수성을 조화롭게 빚어낸 수작이다. 풍치 좋은 도심 고가의 테라스에 앉아 오래도록 숙성된 고급 와인을 마시는 듯한 깊은 맛을 안긴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문가인 레키가(家) 며느리인 엠마(틸라 스윈톤)는 어느 날 마주친 아들의 요리사 친구 안토니오(에도아르도 가브리엘리니)에게 자꾸 눈길을 주게 된다. 남편 탄크레디와 아들이 시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게 되고 물질적으로 부족함 하나 없지만, 안토니오를 향한 마음이 금단의 감정임을 잘 알면서도 엠마는 치솟는 욕망을 어찌할 수 없다. 엠마는 결국 가족이냐 진실된 사랑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대충의 줄거리로만 따지면 통속 드라마라 할 수도 있겠다. 장성한 자녀를 두고, 남들의 시샘을 한 몸에 받을 귀부인이 별볼일 없는 젊은 남자와 연정을 맺으며 뒤늦게 자아에 눈 떠간다는 내용도 지극히 낯익다. 아들의 친구와 정을 통한다는 설정도 더 이상 파격적인 소재는 아니다. 그래도 ‘아이 엠 러브’에는 특별한 무엇들이 있다.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 줄기 안에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을 심어 넣고, 계층 간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을 에둘러 표현한다. 엠마의 폭풍 같은 감정 변화에 따라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는 레키가의 모습은 현대 이탈리아 상류층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엠마는 육체적 사랑을 나눈 뒤 안토니오에게 말한다. “밀라노로 오면서 러시아인이길 포기했어. 거리며 상점이며 너무나 많은 게 넘쳐났지. 남편은 예술품을 수집하러 러시아에 왔었어. 그 후 밀라노에 왔고 다신 돌아가지 못했지.” 러시아 노동자 집안 출신인 엠마가 본 모습을 잃고 물질적 풍요에 빠졌다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은 상징적이다. 좌파가(특히 이탈리아에서) 시들한 이 시대 노동자들에게 우회적으로 각성을 촉구하는 듯하다. 탄크레디에게 가업인 섬유업을 포기하라며 인수합병을 제안하는 인도 사업가의 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자본이 민주주의”라 말하며 돈이 권력의 정점에 오른 현대사회의 본질을 갈파한다.

탐미적인 화면도 관객들을 매혹시킬 듯하다. 화려한 요리로 후각을 자극하고, 고급스런 여러 골동품들이 동공을 찌른다. 회색 빛에 가까운 밀라노의 모습, 햇빛이 넘쳐나는 휴양 도시 산레모의 풍광, 냉기가 흐르는 듯한 금융도시 런던의 풍경은 주인공들의 심리를 나타내며 훌륭한 볼거리의 역할도 함께 한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의 하얀 마녀와 ‘콘스탄틴’의 천사 가브리엘로 국내에 알려진 스윈튼의 연기는 경이롭다. ‘마이클 클레이튼’(2007)으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은 그는 오십 줄의 나이에도 과감한 노출을 마다 않고 질풍노도를 헤치는 귀부인의 모습을 완벽에 가깝게 묘사해낸다. 영국인인데도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며 이뤄낸 심리 연기가 놀랍다.

엠마의 동성애자 딸은 “행복은 사람을 슬프게 하는 단어”라고 읊조린다. 물질이든 사랑이든 종국엔 슬픔을 가져다 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물질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최선 아니겠냐고 이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나는 사랑’이라는 뜻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이탈리아 영화계의 신예 루카 구아다그니노 감독. 20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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